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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만 가옥 문화재 지정취소해야(하)문화재청, 문화재 지정 이후 30여년간 줄포면 주민 목소리 외면... 다음달 10일 재심사 앞두고 주민 300여명 지정취소 서명
전주일보  |  webmaster@jj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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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9  1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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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만 가옥 건립을 기념하는 비석. 이 비석에는 김상만 가옥이 지난 1907년에 건립됐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김상만 가옥에 대한 문화재 지정취소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민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84년 1월에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현재까지 줄포면 주민들은 줄기차게 김상만 가옥의 문화재 지정과 관련한 각종 문제를 제기해왔다.

특히 주민들은 김상만 가옥과 인접한 주택의 피해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왜냐면 김상만 가옥은 초가(草家)지붕이어서 기온이 상승하는 여름철에는 볏짚에서 기생하고 있는 벌레(새내기) 출현은 물론이고 벌레에서 발생하는 악취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가 김상만 가옥을 찾아 사랑채 방문을 열었을 때, 벌레들이 방안 가득히 꿈틀거리고 있었으며 악취 또한 상당했다. 취재에 동행한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원들 또한 지붕에서 벌레들이 자신들의 얼굴에 떨어지는 등 불쾌한 경험을 했다고 말할 정도로 벌레들에 의한 피해가 심각한 상태였다.

더욱이 김상만 가옥의 위치는 불과 50여미터 거리에 버스터미널이 조성될 정도로 줄포의 중심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만 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된 1984년 1월14일 이후로 반경 500미터 이내에서 2층 이상의 건축물을 지으려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줄포 시가지는 70-80년대에 지어진 낡은 건축물이 시가지 양편으로 즐비하다.

결국 줄포 시가지의 건축주 및 입주자들은 김상만 가옥으로 인한 최고의 피해 당사자인 셈이다. 실제로 김상만 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30여년동안 줄포지역에는 5층 이상의 아파트가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초가집 한 채가 혈세를 들여 보존되고 있는 모순과 함께 줄포주민 전체가 큰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줄포주민 A씨는 “솔직히 김상만 가옥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불편하더라도 감수할 용의가 있으나 어렸을 적부터 보아온 김상만 가옥은 아무리 생각해도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찾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당초에는 줄포가 고향인 김상협씨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시절인 지난 1982년에 국무총리로 임명된 후 줄포를 방문했을 때, 자신이 태어난 생가(生家)를 보존하기 위해 이 집을 문화재로 지정한 줄 알았다”고 회고 했다.

 

   
▲ 김상만 가옥 연혁

@김상만 가옥은 기획된 가짜 문화재

이와 같이 지역주민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전주일보 취재 결과 김상만 가옥은 인위적으로 기획된 문화재라는 사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 김상만 가옥 관리인 신모씨는 “이 초가집은 인촌 김성수씨 양아버지인 김기중씨가 사무실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고백했다.

이웃 주민 B씨는 “당시 1907년께에는 1905년에 체결된 을사조약 이후 분노한 의병들이 고창군 부안면 인촌 김성수씨 생가 일대에서 자주 출몰했던 것 같다”며 “당시 대지주였던 김씨 가족들이 위험을 느껴 줄포 사무실로 사용하던 이곳으로 이주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관리인과 주민의 주장과 기억은 김상만 가옥 입구에 설치돼 있는 비석의 문구에서도 일치한다. 이 비석에는 1907년에 이집을 건립했으며 이후 70년대와 80년대에 보수를 했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김상만 가옥은 1907년에 지어진 단순한 초가집에 불과한 것으로 단정 지을 수 있다.

다만 당대의 부호였던 인촌 김성수 아버지 형제들이 의병을 피해 숨어살았던 한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가치는 있다. 하지만 이 초가집은 국민의 혈세를 들여 주민들의 삶의 질과 재산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문화재로서의 긍정적 가치는 없다는 것이 주민들과 일반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그럼에도 부안군을 비롯한 전라북도, 문화재청은 탁상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문화재로서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上)편에서 언급했듯이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조선 고종 32년(1895년)에 이집의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를 지었다고 했다. 또 광무 7년(1903)에 안사랑채와 곳간채를 지었으며 1984년에 문간채를 지어 전체적으로 ‘ㅁ’ 자형을 이루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문화재청은 조선시대에 이 집이 지어졌다는 근거는 무엇이며 지난 1984년에 문간채를 신축한 건축물의 설계는 누가 어떤 근거로 했는지에 대해 논리적 근거를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더욱이 관리인 신모씨는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원들이 김상만 가옥을 다녀간 후 부안군 문화재 관계자가 인촌기념회에서 발행한 인촌 김성수 선생 고택이라고 표기한 홍보물을 당분간 숨겨놓아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다. 관계 공무원이 잘못 지정된 문화재의 진위여부를 가릴 생각은 차치하고 오히려 진실을 감추기에만 급급하고 있는 모습에서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큰 손이 문화재청과 전라북도, 부안군 등의 행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결국 김상만 가옥은 문화재 지정 당시부터 현재까지 누군가의 입김으로 기획되고 관리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현장에 답이 있다

김상만 가옥을 단 한번이라도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도대체 평범한 초가집이 어떠한 절차를 거쳐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될 수 있나”라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은 무려 34년동안이나 탁생행정으로 일관하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왔다.

최근에도 문화재청 관계자는 전주일보 취재팀에게 “친일파라고 해서 그가 남긴 작품이나 살았던 집에 대한 문화재 지정취소를 해야 합니까”라고 반문할 정도로 주민들의 합리적 주장을 묵살해왔던 것이다.

지난 4월12일에 실시한 2차 민속문화재 심사 이전에 부안군 줄포를 방문해 현 상태와 민원인과 항일독립운동단체의 주장을 합리적 시각으로 관찰하고 판단을 했더라면 결코 김상만 가옥은 문화재로서 인정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 지역주민은 물론 본지 취재팀, 민원단체인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의 입장이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과 전라북도, 부안군 관계자들은 다음달 10일에 실시되는 재심사에 앞서 문화재 전문가와 지역주민 등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실사팀을 파견해 한 치 의혹도 없는 명확한 심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문화재 적폐 발본색원 해야

결론적으로 김상만 가옥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문화재로 규정할 수 있다. 당시 줄포에는 김상만 가옥과 같은 형태의 초가집이 3채 있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김상만 가옥과 접하고 있는 또 하나의 초가집과 직선거리 30여미터에 위치했던 김상협 전 국무총리 생가 등 3채의 초가집은 모두가 같은 형태의 목조건물(지붕은 볏짚)이다.

이 집은 1907년께 인촌 김성수의 양아버지 김기중과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가 고창군 부안면에서 부안군 줄포로 이주해 살았던 곳으로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일민 김상만씨가 태어난 곳이다. 훗날 인촌 김성수 일가들이 줄포를 떠나면서 2채는 줄포현지인들에게 매각을 했으며 문화재로 지정된 김상만 가옥은 정모씨와 김모씨에게 관리를 맡겼다.

이후 1982년께 대대적인 리모델링과 함께 새로운 건축물을 신축한 후 1984년 1월에 민속문화재로 등록됐다. 이집의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지난 1962년 12월20일 김병관에게 증여됐다. 김병관은 인촌 김성수의 손자이며 김상만의 아들로 1968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1989년에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현재 이집의 소유자는 김병관의 큰아들 김재호(동아일보 사장)씨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김상만 가옥은 인촌 김성수가 어렸을 적 살았다는 가치보다는 건물이나 주거 형태 등 건축적 요소와 지역적 특색을 가졌기 때문에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에서 제기한 문화재 지정을 취소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김상만 가옥 외에 똑같은 형태로 지어진 나머지 2채의 가옥에 대해서는 왜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았을까하는 의혹이 든다. 문화재청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나머지 2채의 문화재를 문화재청 스스로 상실시킨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결국 문화재청의 주장은 허구에 불과한 것으로 주민들은 물론 일반인들조차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9일 현재 줄포 현지에서는 300여명의 현지인들이 김상만 가옥 문화재 지정취소를 원하는 서명을 마무리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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