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국회의장 어디 없소?"
"좋은 국회의장 어디 없소?"
  • 신영배
  • 승인 2024.04.24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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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배 대표기자

이번 총선은 야권이 분명하게 승리한 선거였다. 하지만 꼭 집어 지적할 수 없지만 2%가 부족한 것 같다. 호남과 대구·경북, 강원을 제외하고는 전 지역이 박빙 승부였기 때문이다. 2년여 동안 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저지른 잘못을 생각하면 진보진영이 체감하는 총선 결과는 분명 서운하다.

물론 총선에서 야권이 192석을 차지한 결과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선거에서 참패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찝찝한 마음이 여전히 가슴 한켠에서 지워지지 않는 건 무슨 까닭인가?

아무래도 필자의 마음엔 방송사들의 출구조사 결과와 선거기간 동안 내내 진보진영의 높은 지지여론이 마음에 걸린 듯싶다. 차치(且置)하고, 이번 선거는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힘찬 국회를 만들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었음은 분명하다.

새롭게 구성된 22대 국회가 시원한 운영과 능률로 마구잡이로 폭주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무도함을 제대로 견제하라는 국민의 간곡한 당부라고 생각한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국회는 환골탈태(換骨奪胎), 과거의 뜨뜻미지근하고 애매한 운영이 아닌 효과적이고 단호한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22대 국회의장은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인사가 선출돼야 마땅하다. 기계적 중립을 유지하느라 사회자 역할에 그쳤던 지난날의 국회의장이어서는 절대 안 된다. 지난 국회를 돌아보면 국회를 멋지게 이끌어 국민의 존경을 받았던 국회의장은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 같다. 존경은 고사하고 머릿속에서 기억되는 국회의장조차 없다. 

지난 1월 18일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기념하는 행사장에서 대통령에게 “국정 기조를 바꾸라”라는 직언을 하려다 대통령 경호원들에게 ‘입틀막’을 당한 채 끌려 나갔어도 국회의원을 대표하는 김진표 국회의장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한 것 같다. 

국회의장은 입법부의 수반이다. 국가 의전 서열 2위의 중요 직책이다. 국가의 주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국회는 대통령, 정부와 함께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국회에서 입법되지 않으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무수하다.

예컨대 세월호, 이태원, 채수근 해병, 양평고속도로,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사건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회의 입법권이 작동돼야 한다. 하지만 여야 간의 합의를 요구하는 전ㆍ현직 국회의장의 기계적, 산술적 중립에 의해 신속하게 국회를 통과하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

그동안 국회는 국회의원 중 다선 의원을 먼저 국회의장으로 선출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실제로 역대 국회의장은 17대 후반 임채정 의장이 4선이었을 뿐, 모두 5선 이상이었다. 그러나 5선 이상의 다선 의원의 경우 나이가 들어 두루뭉술해지고 보수화 돼, 그저 좋은 것이 좋은 지경에 이른다. 그런 점에서 원만한 운영을 위해 다선 의원 위주로 의장을 선출하는 전통이 자연스럽게 조성돼 세파에 닳고 닳아서 둥글둥글한 인물이 국회의장으로 뽑혔을 것이다.

정치 현장에서 일어나는 정당 간 계파 간 정쟁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여야의 정쟁을 공정하게 정리할 수 있는 직책이 바로 국회의장이다. 그럼에도 지난날의 국회의장들은 여야 간 양당의 합의를 명분으로 기계적 중립으로 일관해 민생과 국민적 요구가 담긴 시급한 안건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는 잘못을 관행적으로 유지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가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은 국민에게 매우 익숙하다. 뿐만아니라 주요 언론 또한 여야 간의 이견을 중재하거나, 안건을 아예 사장시켜 버린 국회의장에 대해 그의 능력과 인품을 온갖 미사여구로 칭찬하는 것 또한 관례였다. 의장은 여야 합의라는 지상과제를 위해 헌신하는 중재와 조정 역할만 강요받은 셈이다.

이처럼 국익이나 정의 구현의 판단보다는 여야의 주장을 국회의장이 기계적이거나 산술적으로 ‘중재’, 즉 풀어내는 데만 골몰해 왔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의장의 ‘중재’를 믿고(?) 극단적으로 생떼를 부리는 정당의 의견이 관철되는 것이 상례였다. 

실제로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은 ‘협치’를 명분으로 반드시 국민의힘과 합의를 해야 상정한다면서 버텼다. 결국 이 법안 상정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그 후유증은 최근 권력자가 언론의 목을 조이는 굴레로 되돌아왔다.

국회의장의 무원칙한 ‘중재’는 결국 여야 간 정쟁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될 수 있다. 물론 정치적 중립은 의회를 운영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여야의 주장이 정의와 상식을 벗어나 있음에도 합의만 추구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국민은 평소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지금까지의 국회의장은 국회 안에서나 인정하는 인사였다. 나라의 살림과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법을 만드는 300명 국회의원을 대표하는 입법부의 수장인데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활하고 신속한 국회 운영과 입법을 위해서는 국회의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윤석열 정부처럼 검찰 권력을 앞세워 마구잡이식 인사와 정책을 펼치는 정권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단은 물론 합리적이고 진취적인 인품을 소유한 국회의장이 선출돼야 한다. 

국회의장은 명예직이 아닌 국정의 근간이라 할 법을 만들고 국가의 예산을 정하며 나라 살림을 감시하는 막중한 국회의 우두머리다. 정당 정파 간 이익을 위해 쌈박질이나 하는 정쟁 마당의 뚜쟁이 역할에 만족하던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도 윤석열 대통령은 평소 성정으로 미뤄 그는 절대로 국정 기조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선거 패배 이후 첫 국무회의에서 이 정권의 기조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재확인했다. 다만 세부적인 면에서 조금은 서툴렀다며 "기조는 변하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런 대통령과 정부를 상대로 효과적인 견제를 통해 국정을 바로잡는 역할이 이번 새 국회에 부여된 책임이다. 이번 22대 국회가 어느 때 국회보다 중요한 이유다. 국회가 효율적으로 정부를 견제하고 조정하지 못하면 나라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정부와 싸우는 국회가 아니라 어설픈 정부를 이끄는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적임자를 국회의장으로 선출하고 그의 지휘 아래 새로운 정치 관행을 만들어 가야 한다. 고환율, 고물가, 불경기에 신음하는 민생에 희망을 주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인물이 민주당 다선 의원 가운데 있는지 모르지만, 좋은 선택을 위해 조건을 넓히고 차분하게 살펴야 한다. 그리하여 최선의 인물을 찾아내서 중임을 맡겨 이 난국을 풀어가야 한다. 좋은 국회의장님 후보 어디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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