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축제, 선화공주만 있고, 사탁왕후는 실종
서동축제, 선화공주만 있고, 사탁왕후는 실종
  • 고재홍
  • 승인 2011.09.22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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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축제, 선화공주만 있고, 사탁왕후는 실종


-사리장엄 발굴 3년째 사탁왕후 관심도 없어
-삼국유사 설화에 근거한 선화공주는 축제전면에,
-금제사리봉안기에 기록된 역사에 근거한 사탁왕후는 사리장엄 발굴 3년째 서동축제에도 언급조차 없어.
-역사는 무시되고 설화만 강조한 축제
-과도기 상황 선화공주에 사탁왕후도 동시선발해야
-전국적 관심 촉발 계기 될 듯



미륵사지석탑에서 '국보 중의 국보'라는 '금제사리호'와 '금제사리봉안기' 등 수천여점의 유물발굴 3년여가 흘렀으나 익산시의 올가을 서동축제는 여전히 서동왕자와 선화공주만 앞세우고 봉안기에 기록된 사탁왕후는 언급조차 없어 설화만 강조되고 역사가 무시된다는 여론이다.



이에 정확한 역사고증이 나오기 전이라도 과도기적으로 경주에서 선화공주를 선발하고, 부여나 익산에서 사탁왕후를 동시에 선발해 축제에 활용하면 전국적인 관심과 학술논쟁을 불러 일으켜 서동축제와 익산시를 전국에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산시는 올해도 시비 6억5천만원과 도비 5천만원 등으로 9월30일부터 10월3일까지 중앙체육공원 일원에서 서동축제를 개최하는데 익산역사유적지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원하는 백제시대 행렬과 서동선화 행차 퍼레이드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는데 경주에서 선화공주 선발과 익산에서 서동 선발 및 서동선화 결혼식 등 행사가 치뤄진다.



이는 고려때 일연(1206~1289)의 '삼국유사'에 "미륵사는 무왕의 왕비, 선화공주 발원으로 용화산 아래 건립됐다"는 기록과 "즉위전 무왕이 경주에서 서동요를 아이들에 퍼트려 선화공주와 결혼했다"는 설화를 근거로 경주에서 뽑은 선화공주와 익산 선발 서동왕자를 활용한 축제다.


여기에는 서동과 선화공주 설화를 활용한 '뮤지컬'이 진행되고, 경주시와 익산시가 자매결연을 맺고 상호방문 등 신라와 백제 국경을 초월한 애뜻한 사랑이야기가 '서동축제' 골격을 이루며 사극 '서동요'에 활용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으로 서동요 세트장도 만들어진 적도 있다.


그러나 무왕을 전후해 신라와 백제는 무수한 전투를 벌였고, 무왕(재위 600~641) 아들인 의자왕(재위 641~660)때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멸망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삼국유사 기록과 설화에 의문이 제기돼 온데다 "궁궐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에서 물을 끌어들여(중략) 섬을 만들었다"는 기록과 삼국유사 서동탄생설화가 있는 궁남지를 근거로 '부여군'도 해마다 '서동.연꽃축제'를 벌이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그러나 2009년 1월 공개된 미륵사지석탑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에는 백제의 좌평(佐平) 사탁적덕의 딸인 백제왕후가 건립.발원했다는 내용이 판독됐는데도 익산시는 能謹捨淨財造立伽藍'이라는 "(사탁왕후가) 능히 깨끗한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세웠다"는 역사를 무시하고 3년이 흐른 서동축제에도 여전히 사탁왕후는 언급도 없이 선화공주만을 앞세우고 있다.



이에 뜻있는 시민들은 "사리장엄 봉안기는 역사고, 삼국유사는 설화인데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세웠다'는 사탁왕후를 거론조차 않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며 "과도기적으로 경주 선화공주와 부여나 익산에서 사탁왕후를 동시에 선발한다면 전국적 관심을 촉발시켜 익산과 서동축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서동축제 전반적인 재점검 등 관심을 주문했다./고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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