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카 프
스 카 프
  • 전주일보
  • 승인 2011.06.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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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야외 나갈 때 여자들이 챙이 넓은 모자를 쓴다.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다. 밀짚모자를 쓰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모자가 없던 시절 들일을 하는 아낙네들은 머리에 융수건을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흰 융수건은 직사광선을 막아주고 반사시키기 때문에 그만큼 열의 흡수가 적어 더위를 덜어준다. 굳이 요즘식으로 이름을 붙이자면 이 융수건은 우리 아낙네들이 쓰던 스카프였던 셈이다.

이 스카프를 너무도 좋아했던 여인이 있다. 미국의 여류 무용가 던컨 이사도라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이사도라는 전통 발레리나들이 숙명처럼 신고 있어야 했던 토슈즈를 벗어버리고 스승도 없이 맨발로 춤판에 뛰어들었다. 헐렁한 그리스 관의(寬衣)를 입고 추는 그의 독특한 춤은 그 어떤 발레하고도 달랐기 때문에 자유무용이라 불렸다.

처음에는 별로 환영을 받지 못했지만 미국보다는 서구 도시에서 성공을 거두고 러시아에까지 진출해 러시아 현대 무용의 뿌리를 심었다. 만년에 그녀는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살았는데 고집스럽게도 스카프를 하고 다녔다. 1927년 9월 어느날. 나이 쉰살의 이사도라는 스포츠카를 몰고 니스 근방을 달리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목에 좋아하는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그런데 바람에 펄럭이던 그 스카프가 불행히도 자동차 뒷바퀴에 감기는 바람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녀의 죽음은 춤판에서 토슈즈를 벗어던진 그의 자유의지 만큼이나 분방하고 일탈적인 것이었다.

스카프는 목에 감기도 하고 머리에 쓰기도 하는 장식품이지만 방한(防寒) 방서(防暑)에도 이용된다. 그 원형은 추운 지방 사람들이 방한용으로 목과 머리 어깨를 싸던 천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서유럽에 들어간 것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때. 액세서리로 여성들이 쓰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부터다.

몇년전 터키에서는 한 여성 의원이 스카프를 쓴채 의회 등원을 고집하다 의원직을 잃은 일도 있었다. 열차에 몸을 던진 안나 카레니나도 스카프를 썼다던가. 일교차가 10도 이상이나 되는 요즘 감기 환자가 급증하면서 의사들은 스카프를 목에 감고 잠들라고 권고하고 있다. 옳은 말이다. 외출 때도 중요하지만 이제 스카프는 잠잘 때도 요긴한 생활용품이 돼 가고 있다.

/무등일보 주필  김 갑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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