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위에 마음을 새긴다
돌 위에 마음을 새긴다
  • 김상기
  • 승인 2010.07.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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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고암 새김아트 초대전
반기문 UN사무총장 직인 제작, 초ㆍ중ㆍ고등학교 국정교과서에 작품 수록, MBC 2008 베이징 올림픽 타이틀 및 전각애니메이션 제작, 국립현대미술관 작품소장, 그 밖의 헤아리기도 힘든 다수의 이력들.

전각예술의 선구자, ‘새김아트’라 불리는 현대적 전각예술의 신 영역을 구축한 고암 정병례(62)가 지난 19일 전주시 경원동 구 대성학원 자리에 문을 연 ‘루이엘 햇 컬쳐센터’ 기획전시실에서 새김아트 초대전을 열고 있다.

전각은 가장 흔하게는 ‘도장’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도장은 예술이 아닌 기술 수준이다. 전각이 예술의 차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문자, 회화, 조각, 디자인의 예술적 특성이 집약돼야만 한다.

작업과정을 보자. 먼저, 돌 위에 먹으로 밑그림 그려 넣는다. 이 밑그림이 예술성을 좌우한다. 그림을 전각용 돌과 칼로 파낸다. 여기까지는 전통적 방법이다.

이젠 현대적 특징이 더해진다. 정병례만의 다색 전각이 탄생하는 것. 판화물감을 이용해 한국의 오방색을 전각에 바른다. 과거 전각은 붉은 색으로만 표현됐었다. 도장 찍을 때 붉은 색 인주를 발랐던 것처럼. 하지만 작가는 색상의 규제를 가볍게 넘어선다.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단색을 쓸 수도 있지만, 다색을 쓸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런 사고의 전환 하나가 그를 현대적 전각 제작의 선구자로 만든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직껏 누구도 하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지에 작품을 찍어 완성한다. 한지는 색을 잘 흡수하면서도 조각한 돌의 질감까지도 전해주는 장점이 있다.

그는 전각이 도장쯤이라는 생각, 돌에만 새긴다는 선입견, 한쪽 면만을 사용한다는 편견도 모두 버렸다. 한지에 찍은 작품은 그대로 완성작이기도 하지만 그 위에 철사, 골판지 등의 오브제를 이용해 새롭게 구성하기도 한다. 역시 그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영역이다.

“오브제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재료일 뿐이고, 또 재료가 바뀐다는 것은 작품을 완성하는 도구가 하나 변했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술의 본령이라는 것은 도구가 어떻게 바뀌느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부여팔경’과 같은 전각 설치 작품도 나올 수 있었고, 삼족오를 활용한 전각 애니메이션도 제작할 수 있었다. 이 모두가 그가 벌인 첫 번째 시도들이다. 전각을 근간으로 하되 그 활용에 있어서는 전혀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시도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다. 그의 작품이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새기는 거야 연습하면 다 할 수 있지만, 구성이 중요합니다. 왜 그려야 하는 건지, 그려진 메시지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감흥을 일으키게 하는 소통의 수단으로서 작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작가가 손재주 부린 것에 불과합니다. 난 석공이 아니에요.”

한 가지 더. “내가 나를 못 말리는 것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할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엄청 많다는 것이겠지요. 과거의 했던 것이 비록 자신만의 것이었다고 해도 계속 개발하지 않고 쓴다면, 그건 예술가의 본령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술가는 끊임없이 뭔가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는 옛 전통에 현대적 감각을 더하면서 더욱 다양하고 풍부한 작품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전시는 8월18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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