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시(詩)
12월의 시(詩)
  • 이옥수
  • 승인 2009.12.0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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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을 대하니 문득 ‘동짓날 기나긴 밤’을 지새며 임을 기다리던 여인, 조선시대 시인이자 명기(名妓) 이 매창이 떠오른다. 그녀의 시조 한 수를 풀어보자.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도다”

황진희는 “동짓달 긴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 내어/봄 바람처럼 따뜻한 이불속에 서리서리 넣어 두었다가/정든 임이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펼쳐 내어/그 밤이 오래오래 새게 이으리라” 날씨는 추워지고 밤조차 길어지니 연모(戀慕)의 정 역시 절실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또 한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 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 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시오” 이해인 시인은 지나버린 시간보다는 남아 있는 시간에 감사하라 했지만 막상 달력의 마지막 장 앞에 서니 숙명처럼 다가온 12월에 대한 회한을 어찌 할 수가 없다.

시인들은 12월을 두고 이러한 회한을 쏟아냈다. 강은교 시인은 12월을 차츰 사라지는 ‘잔 별’과도 같다고 했다. “마지막 촛불을 켜듯/잔 별 서넛 밝히며/누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뒤도 돌아보지 않고/제 그림자를 거두며 가고 있다”

최연홍 시인은 12월을 잿빛하늘이라 노래한다. “12월은 잿빛하늘, 어두어지는 세계다/우리는 어두어지는 세계의 한 모퉁이에서 우울하게 서 있다/이제 낙엽은 거리를 떠났고/나무들 사이로 서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눈이 올 것 같다, 편지처럼” 시인 황지우는 12월의 현실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12월 저녁거리는/돌아가는 사람들을/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무릇 가계부는 탕진이다/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내민 손처럼/불결하고, 가슴 아프고/신경질나게 한다”

하지만 오세영 시인에 의해 12월은 아름다운 것으로 재탄생된다.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유성처럼 소리 없이/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제 이해인 시인을 통해 12월에서 희망을 찾아 보자.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 내고/새 달력을 준비 하며/조용히 말 하렵니다/‘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 날이여’/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고마운 시간들이여” 부안=이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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