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칼럼) 자식을 가슴에 묻고
( 데스크칼럼) 자식을 가슴에 묻고
  • 이옥수
  • 승인 2009.11.10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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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손이 부모에 앞서 죽는 것을 참척(慘慽)이라 한다. 실로 슬프고 참담하기 이를데 없다는 의미이다. 한무숙의 소설 ‘만남’에는 “십오 세에 장가들어 아들 여섯 딸 셋, 푸짐하게 했지만 딸 하나 아들 셋, 눈앞에서 참척을 당해야 했다.”며 아들의 죽음을 겪은 실존적 체험을 그렸다. 효경(孝經)에는 “효(孝)의 마침은 자식이 잘 되고 부모보다 늦게 죽는 것”이라며 부모 앞에 죽는 것을 가장 큰 불효라 여겼다.

1987년 7월 연세대에서는 6월 민주항쟁 과정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사경을 헤매다 27일만에 숨진 고 이한열군의 추모 국민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운집한 수 십만의 군중 앞에 고 이한열군의 어머니 배은심씨는 “데모를 하더라도 뒤에서 하랬는데 왜 시위대 앞에 섰었는지를 묻고 싶다.”며 오열했다.

이보다 앞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 도중 숨진 박종철군의 아버지 박정기씨는 황망한 가운데 아들의 유해를 화장해 강에 뿌리면서 “잘가그래이 아버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라고 절규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모진 상황에 대해 통절했던 것이다.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자식을 가슴에 묻은 이들이 어찌 이들 뿐이겠는가. 숱한 젊은이들의 희생은 그 부모들의 피 맺은 절규로 이어졌고, 이들을 막는 과정에서 희생된 경찰의 부모들도 같은 절망을 겪어야 했다.

또 2002년 서해 교전에서 숨진 6명의 젊은 군인들의 부모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가 분단과 독재의 시대로 인해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비극이었다.

신종플루로 인한 희생이 늘고 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경우 성인보다 면역력이 약해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아이를 둔 부모들은 가벼운 감기증상만 보이더라도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있다. 이제와 생각하니 모두가 오락가락했던 보건당국의 안일한 대응 때문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엊그제 유명 탤런트의 일곱 살 아들이 신종플루로 인해 사흘 만에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창졸지간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어느 누가 필설로 다할 수 있을까. 감내하기 어려운 슬픔, 참척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그저 위로의 말을 전할 뿐. 부안=이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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