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助演)이 되라하면
조연(助演)이 되라하면
  • 전주일보
  • 승인 2009.11.1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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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주연(主演)은 선덕여왕인데, 사람들은 조연(助演)인 미실에 더 주목한다. 주연이 아닌 조연에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

답은 인간이 정의하는 단어의 불완전함에 있다. 선덕여왕과 미실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주연과 조연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진위논란이 있지만, 필사본 [화랑세기]에 그려진 미실은, 진흥왕에서 진평왕에 이르는 3대 40여년간 절대권력을 휘두른 ‘팜므 파탈(Femme Fatale)’이자, 강한 여성의 상징으로 부족함이 없는 존재이다.

현재의 역동적인 대한민국 구성원들에게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할 수 있는 충분한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실만이 그런 대상일까?

우리가 자신에게 조금만 너그러울 수 있다면, 의외로 대상은 많다. 아니, 전부가 대상일지 모른다.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사르트르의 명제도, 모두가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내가 존재하기에, 모든 것에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것이다. 타인에게 다가서는 나의 존재감이 미미할지라도, 그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조연이 아닌 주연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연과 조연을 구분하려 한다.

조선의 세종과 베트남의 호치민(胡志明)이 주연이라면, 태종과‘보 구엔 지압’은 조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사람들이다.

사대부로서 극형을 당한 사람이 없으며, 우리 역사 최고의 시대라는 세종의 치세는 태종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태종은 아들 세종의 손에 피가 묻는 일이 없도록 모든 악역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디엔 비엔 푸’에서 프랑스를 항복시키고, 세계최강 미국을 상대로 독립을 지켜낸 호치민의 별명은 ‘호 아저씨’이다.

베트남인들이 베트남역사상 최고의 위인이라 존경하는 인물 호치민 !

그가 장군이나 혁명가 호치민이 아니라, 아저씨로 불린 이유는 무엇일까?
베트남인들에게 호치민은 강인하고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인자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다가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호치민이 철혈 혁명가라는 위치와 더불어 인자함을 항상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자함을 유약함으로 몰아가려는 세력으로부터 강함을 보여줄 수 있었던 ‘보구엔 지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은 한신(韓信)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선조가 충무공을 눈엣가시로 생각했듯, 권력자에게 명장은 숙청의 대상일 뿐이다.
호치민이 위대한 것은, ‘보 구엔 지압’ 같은 명장을 끝까지 믿고 지켜줬다는데 있다.
그리고, ‘보 구엔 지압’ 역시 호치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누가 주연이고, 조연인가?
세인들의 눈에 보이는 주연을 만들어가고 지켜내는 것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조연 몫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화려하지 않고 존재감이 없을지라도, 내 삶의 주연이 나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다.
누가 우리에게 조연이 되라하면, 기꺼이 그리하자.
그 역할과 비중은 우리의 열정과 노력에 따라 크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주연을 만들어낸 조연의 공을 잊지 않으리라.

/완주군 농업기술센터 지도사  장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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