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크칼럼 가을 들녘만큼 넉넉한 마음이여라 !
테스크칼럼 가을 들녘만큼 넉넉한 마음이여라 !
  • 이옥수
  • 승인 2009.10.26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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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들녘만큼 넉넉한 마음이여라 !  
 
아침 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할 만큼 제법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하지만 도시에서 맞이하는 가을은 조금 쓸쓸한게 사실이다.
 빌딩 숲 사이로 자동차 경적이 요란한 대로변에 서서 언제 여름의 신록을 자랑한 적이 있었느냐는 듯 갈변한 낙엽을 떨구는 가로수에서만 가을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와 달리 시골의 가을은 쓸쓸함 대신 넉넉함으로 채워진다.
 1년 농사의 결실을 앞둔 황금들녘은 시골집 앞마당에 앉아 고추를 말리고 있는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변산반도 내변산 해안도로를 지나다 노랗게 고개를 숙여가는 들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난 한가위 기억이 떠오른다.
 지난 추석엔 늘 전화로만 안부를 전하던 작은 어머니를 찾아뵀었다.
 반가운 마음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담을 나누며 옛일들을 추억하다보니 내가 나이든 곱절만큼 작은 어머니는 더 늙어가고 계셨다.
 건강 얘기며 농삿일이며 옆집 김 씨 아들이 회사에서 승진한 얘기까지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다 보니까 그동안 작은 어머니께서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시골 밥상에 마주앉아 저녁까지 함께 하고서야 길을 나서려 일어서자 작은 어머니께서는 한 해 거둔 고추와 마늘, 사과, 배 등 그야말로 풍년이 든 보따리를 싸주셨다. 게다가 메주콩이 있다며 광으로 뛰어 들어가시더니 장독에 정성스레 담아 두었던 콩을 듬뿍 퍼서 몇 바가지를 담고 또 담아 주셨다.
 팔순이신 연세에 힘들게 지은 1년 농사를 조카에게 다 빼앗기시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일 들 기도했고 앞으로 그리 오래 뵐 수는 없을 거란 생각에 가슴 한 켜니 아려왔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맑게 갠 하늘 아래 달빛에 비친 황금들녘은 낮에 본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운치 있게도 밤안개가 살짝 내려앉은 들녘의 모습은 정말로 장관이었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다. 작은 어머니의 따뜻한 정과 자연이 보여준 경이로움 때문인지 돌아오는 길에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아마도 시골에서 하루가 자칫 메말라가던 소승의 감성을 일깨워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아마도 지난 한가위 시골을 찾았던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내년 설날까지 시골을 찾을 일이 없을 것이다. 학교와 회사와 가정에서 너무도 바쁜 일상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쫓길 때일수록 마음이 넉넉해지는 시골을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멀리 개 짓는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가 향수를 더해주는 변함없는 모습의 고향에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의 안식을 얻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유를 충전하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꼭 명절에만 찾는 곳이란 생각을 접고 아무때건 심신이 지칠 때 찾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한 층 마음이 편한 해질 것이다. 시골이 갖고 있는 매력은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롭고 감사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가을 이맘때면 늘 황금색 벼가 바람에 넘실대는 시골에 가고 싶어진다.
 떠나올 때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게 했던 작은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며 이번 주말 시골에 내려갈 계획을 세워본다. 부안=이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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