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술治術과 의술醫術, 같으면서 다른 길”
“치술治術과 의술醫術, 같으면서 다른 길”
  • 전주일보
  • 승인 2024.02.2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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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 52

 

 

 

 

 

한 호흡 자르는 건

온 생명 숨길을 끊는 것

 

한 숨길 잇는 건

온 목숨 줄 살려내는 것*

 

겨울에도 홍매화는 봄을 찾아

어두운 숨결마다 꽃봉오리 길을 내듯

 

밝은 눈, 손길로 세상을 읽으시고

어진 손, 눈길로 사람을 살피시니

 

*<꾸란 5:32>

 

졸시눈길 손길 -千手觀音보살을 기다리며

무슨 전문 영역에 대하여 궁금증이 일 때, 우리는 겁부터 먹는다.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데, 나와는 무관한 일인데, 하며 손사래를 치며 접근하기 어려워한다. 그런데 나와 전혀 상관이 없고, 내가 전혀 모르는 영역이라 할지라도 그게 내 삶, 심지어 내 목숨, 나아가 내 가족과 이웃에 관계된 일이라면, 아연 태도가 달라진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정치와 의학[의술]이 아닌가 한다.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경향을 보면 이 두 영역에 대해서는 모두가 정치가요, 모두가 의사가 다 된 듯하다.

정치란 무엇이고,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모든 정의를 제치고 떠오른 것은 오로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서로의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여기에서 서로의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것은 정치의 역할일 터이고,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하는 것은 정치의 목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본래의 뜻에서 벗어난 정치와 정치 행위는 정치가 아니라 권모술수와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민의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제정한 법률을 최고 통치권자가 거부권이라는 이름으로 무력화시킨다면,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번번이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살 수 있게 하겠는가?

 

그것도 정치세력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이라면 만에 하나 모를 일이다. 그도 아니고 온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걸린 문제를 당리당략과 집권세력의 이해타산에 따라서 거부권을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이마구 남발하는 행위는 이미 사람들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비정치-반정치 행위라 아니 할 수 없다.

 

의학[의술]이란 무엇이고, 의술의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도 차고 넘치는 형국이다. 비록 의학전문가가 아니라도 체험에서 얻은 인식과 현대문명의 혜택으로 넘쳐나는 의학 정보를 접한 사람들은 의학에 대하여 전문가 이상으로 알고 있다고, 자부하거나 착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형편이다.

 

의학은 의사에 의해서 집행되는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학문이다. 의학[의술]을 직접 행하는 의사의 본분과 역할, 그리고 목적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드러나 오랫동안 의료인들이 지켜야 할 윤리적 기준으로 전승되어 왔다. 그러다가 1948제네바 선언을 통해서 오늘날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내용이 확립되었다고 한다. 선서 내용 중 핵심은 이렇다.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이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최고의 존중을 유지할 것이다.”

 

의과대학생을 증원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정책에 대하여 일방적인 증원은 안 된다고 반대하는 의학계의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갈등 양상을 보이면서 대립하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난감하기만 하다.

 

앞에서 살펴본 봐와 같이 정치나 의학이나 의미와 목적은 같다.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살게 하는 정치와 환자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이라는 의사들의 본분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서로를 앙숙으로 여기는 걸까?

 

역할과 목적이 같을지라도 주어진 힘을 다르게 행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한다. 주어진 권력으로 정치를 하지 않고 통치술로만 여기기 때문은 아닌지, 사람다운 삶에 목적을 두지 않고 집권세력의 확장에만 뜻을 두고 있는 건 아닌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전문 의술로 치료보다는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부만 쌓으려 하는 건 아닌지, 국민들이 지닌 의혹의 시선 또한 만만치 않다.

 

참다운 치술治術과 의술醫術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봉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일부 비뚤어진 정치 모리배, 의료비를 과다 청구하여 의료보험체계를 농락하는 소수 의료인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치술과 의술을 의심하고 비난한다.

 

이 비뚤어진 현상을 극복하려면 세상일을 손바닥 보듯 살펴볼 수 있는, 슬기로움과 자비로움을 갖춘 천수관음보살과 같은 정치인과 의사가 나서야 할까 보다. 천수관음보살은 천 개의 눈과 손이 있어 살아 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이때의 손[]과 눈[]은 단순히 보고 만지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자비를 행하고, 자비의 손으로 지혜롭게 보살핀다는 뜻이다.

 

이런 관음보살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천수관음보살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지혜로움으로 올바른 정치인을 뽑는 국민의 손과 눈, 자비로움으로 의로운 의료인을 가려낼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손과 눈에 달려 있을 뿐이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모이면 천 개 만 개 수천만 개의 손이 되고 눈이 되는 길, 그 길 말고 다른 방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슬람교 경전 코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고 한다. "타인과 그리고 지상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아니한 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살해하는 것은 전 인류를 살해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전 인류를 구제하는 것과도 같다"-<꾸란 5:32> 정치인이나 의료인이나 이런 마음가짐으로 치술과 의술을 행하기 바란다. 모든 생명이 존중받으며, 모두가 행복해 지는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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