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명절,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 전주일보
  • 승인 2024.02.1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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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 51

 

구순을 넘으신 형님을 모시고 설날 차례를 지낸 뒤

음복을 하며

박지원의 한시**를 읽었다

연암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형님 얼굴에서 읽었는데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디에서 볼 것인가 울음 머금는 시였다

설날 뒤끝, 텅 빈 집안을

고요한 음률이 빈틈을 채우는 동안

가득한 나이 그루터기마다 심은 나무들이

모두 벌거벗은 겨울나무가 되는 날이 오기는 올 것인데

그날이 오면,

어느 길목에 흩어진 낙엽에서

우리 형님 얼굴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내 남루를 눈물처럼 흘릴 수 있을 것인지

 

*Brahms FAE 바이올린 소나타

**연암 한시: 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行

 

졸시명절 -자유롭지만 고독하게*전문

그날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빨리 왔으면 하고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하듯 기다려지는 즐거운 날이건, 오지 말았으면 하고 그 날짜를 잊으려 하는 날이건, 시간은 째깍째깍 잘도 찾아온다. 즐거운 미래는 더디게 와서 휙 가버리고, 끔찍한 미래는 금세 와서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 같다. 휴가는 시작하자마자 끝나는 날이 오는 것 같고, 빚을 갚아야 할 날짜는 오지 않았으면 해도 금방 다가오곤 하는 것처럼.

학창 시절 방학은 얼마나 기다려지던가. 손꼽아 기다리던 방학이 시작되면 그 많은 날들이 아주 많은 날들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래서 방학숙제며 일기 쓰기며 미뤄두고 마음껏 들로 냇가로 나가 놀기에 바빴다. 그런데 개학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빨리도 왔다. 낼모레면 벌써 학교에 가야한다. 부랴부랴 매일 써야 할 일기는 며칠씩 한꺼번에 날짜를 메웠다. 가장 곤란한 기록은 날씨였다. 지난날들의 기상 상황을 어떻게 찾아 기록할 수 있단 말인가. 또래 동무들과 정보를 교환하며 벼락치기 일기, 숙제로 개학 날짜를 맞추곤 하였다.

그 중에서도 손꼽아 기다리지만 쉽게 오지 않는 것이 명절날이요, 왔지만 매우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또한 명절날이다. 설날이나 한가윗날이 되어야 새 옷도, 새 신발도 얻어 입고 신을 수 있으니, 어찌 기다려지지 않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평소에는 구경하기도 힘든 귀한 음식들이 넘쳐나는 명절은 아무리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도 쉽게 오지 않았고, 왔는가 하면 금세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철이 들면서, 나무의 나이테처럼 명절 나이테를 더해가면서 어렴풋이 인생 밑그림이 그려진다, 내 깊은 심연에. 명절뿐만 아니라 즐겁게 기다려지는 날들은 더디게 와서 쉽게 지나가 버리고, 빚 갚을 일이나 쌓인 숙제를 풀어야 할 날들은 쉽게 와서 더디게 간다는 것. 그리고 즐거움은 기다림에 있으며, 정작 그날을 지나고 난 뒤의 풍경은 말할 수 없이 쓸쓸하고 허전하다는 것.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다. 모든 잔치의 앞마당은 기쁨으로 차일을 치고, 잔치가 끝난 뒷마당은 허전한 외로움으로 가을 뜨락을 차린다.

설날이라고 모처럼 집안이 사람 냄새로 진동한다. 부모 자식도 한 자리에 만나기 어려운 시대, 형제들과 그 아이들-손주들이 모여 차례를 올린다. 셈해보니 조손간, 당질간, 사촌 오촌 육촌이 한 자리에 모였다. 차례가 끝나고, 세배를 받고, 설날 명절이 그렇게 지나간다, 예년처럼. 그런데 심연에 고이는 정경이 예년과 다르다. 구순을 넘기신 가형께 자꾸만 마음자리가 머문다. 아직은 건강하신데, 아직은 정정하신데, 아직은, 그래도 오지 말았으면 하는 그날이 더디게라도 언젠가는 오고야 말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내 심연의 그림들이 자꾸 흐려지기만 한다.

마침 연암 박지원(1737~1805)의 글을 읽고 있었다. 연암의 심연도 그렇게 흐렸던 모양이다. 연암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형님의 용모를 통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형님마저 안 계신다면 이제 어디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형님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연암은 의관을 정제하고 냇물에 자기 얼굴을 비춰보면서 그리움을 달랜다고 하였다.-[我兄顔髮曾誰似(아형안발증수사)/ 每憶先君看我兄(매억선군간아형)/ 今日思兄何處見(금일사형하처견)/ 自將巾袂映溪行(자장건몌영계행)=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이제 형님이 그리우면 어디에서 볼 것인가?/ 두건 쓰고 옷 입고 나가 냇물에 내 얼굴 비춰 봐야겠네.]-<원철낡아가며 새로워지는 것들에 대하여불광출판사>

망백의 연치에도 강건하신 가형의 모습을 뵙는 것이 그저 감사하다. 그러나 언젠가 맞이하게 될 그날을 생각하면 그저 암울한 기분을 억제할 수 없다. 띠 동갑으로 열두 살 아래인 필자의 처지를 생각하면, 연암의 시심이 곧 나의 것임을 절감한다. 늙는다는 것은 한편 생각하면 자유로운 처지가 되는 셈이다. 한 인생을 돌아볼 수 있을 뿐, 내일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 내일이 고독한 시간의 뒤안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 그 길마저도 잘 살아온 한 인생엔 자유를 구가하는 해방일 수 있을까?

브람스는 의기소침해 있는 절친이자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에 선물을 주고자 슈만과 그의 제자 알베르트 디트리히가 의기투합하여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한다. 디트리히가 1악장을, 브람스가 3악장을, 슈만이 2악장과 4악장을 완성하였다. 이 바이올린 소나타 곡에는 ‘F-A-E’라는 부제가 붙었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Frei Aber Einsam”의 약자다. 요하임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CD 재생기에 음반을 올려놓는다. 브람스, 슈만, 디트리히 세 사람의 우정이 요하임의 가슴을 적셔주는 듯하다. 삶의 가치 덕목을 하나만 꼽으라면 자유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 자유는 한없이 깊은 심연에서 길어 올리는 고독한 영혼의 노래와 다름없다. 명절 뒤끝, 잔치가 끝난 뒷마당을 서성이며 그 노래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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