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이다. 얼었던 골짜기에 얼음이 녹아 흐르기 시작하고 들판엔 봄나물이 뾰족이 고개를 내미는 양춘가절(陽春佳節)에 들어서는 때다. 총선을 두 달여 남기고 정치판은 보이지 않는 암중모색으로 시야가 뿌옇게 흐려 있다.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과 이낙연 위원장의 미래연합이 발족하여 민주당의 과반의석을 저지하려 나섰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30%대 지지율을 넘어서겠다고 발싸심하지만, 잇딴 거부권 행사와 디올 백 의혹 등 악재가 겹쳐 쉽지 않아 보인다.
박지원 전 국정원 원장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데 대해 "29 대 63! 농구 게임 스코어가 아니다. 윤 대통령 긍정 평가 29%, 부정 평가 63%"라며 "만약 내각제라면 정권이 휘청거리고 물러가야 할 수준"이라고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밝혔다.
이 여론조사는 지난 1월 30일부터 2월 1일까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로 한동훈 국민의힘 위원장은 "우리는 국민을 위해 정치하는 사람들이고, 국민의 평가는 여러 양태로 나오는데, 거기에 대해선 제가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에둘렀다고 한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말 윤 대통령과 갈등이 노출되기도 했으나 총선이라는 중대사에 더는 대안이 없다는 절박한 사정으로 임시 봉합된 듯 보인다. 한 위원장은 국회의원 세비 삭감 주장과 기득권 86세대 후퇴 등 민감한 사안을 던지며 시선을 끌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취임 초기 잠시 반짝했으나 잇단 실수와 돌출행동, 일방통행 정치로 30%대를 맴돌다 20%대까지 떨어졌다. 국민의힘에 무혈 입성하여 당 중심을 꿰어찬 뒤로 충성파를 기용하더니 그들마저 내치고 한 위원장을 앉혀 총선을 지휘하고 있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이라는 옛말이 있다. 군주 시대 임금이 정사의 모든 부분을 일일이 간섭하고 결정하는 일을 말한다. 정치에서 큰 줄기만 잡고 조절하며 자잘한 일은 나누어 맡기는 게 일반적이다. 모든 일을 다 알아서 간섭하는 일은 결코 능률적일 수 없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의 얕은 조언에 마음을 움직여 중대한 결정에 개입하는 일은 퍽 위험하다. 외곬 검사 인생에서 갑자기 큰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 노릇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함부로 명령하다간 폭풍우에 난파하거나 침몰할 수 있다.
나라의 최고 권력인 대통령 자리는 실수를 용납할 수 없는 자리다. 말 한마디, 간단해 보이는 결정이 모두 국민의 생활과 장래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그래서 거대한 조직의 비서실을 두고 검토하고 연구하여 최선의 길을 찾아 대통령의 손에서 집행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대통령의 결정이 아무런 검토조차 없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듯하다. 그 즉흥적인 한 마디에 정부조직과 여당은 무조건 따르고 시행하고 보는 지당대신(至當大臣)들만 득시글거리는 듯싶다. 말이 떨어지면 즉시 ‘지당하옵니다’라던 게 지당대신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수구 세력이 약방의 감초처럼 써먹던 북한의 적대의식 발언과 전쟁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역대 보수 정권이 국민 불안 심리를 자극하여 표를 얻어 온 수법이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9.19. 군사 합의를 정지시켜 북한을 자극하자, 김정은이 1월 초에 “대한민국 족속들을 우리의 주적으로 단정” 운운하며 “주저 없이 수중의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한민국을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고 위협했던 일이 있었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에 호재가 나온 셈이다. 또 미국의 북한 전문가라는 인물이 김정은이 전쟁을 결심했다며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도 내놨다. 자못 분위기가 흉흉하게 돌아가는 듯한데 또 다른 뉴스는 예상 밖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김정은이 북한 곳곳에 대형 온실을 지어 채소 증산에 성공했다는 기사였다. 채소 생산을 위한 대형 수경‧토양재배 온실들을 지어 농촌문화 건설의 본보기라고 선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온실을 북한 곳곳에 있는 비행장을 밀어버리고 지었다고 한다.
한겨레 신문이 보도한 이 내용은 일본 기독교대학 국제 관계학 교수로 재직 중인 한반도 관련 전문가의 글 내용이었다. 글에서 북한은 지금 경제 개발이 다급한 상황이어서 전쟁을 일으킬 여유나 생각이 없으니 제발 가만두라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사실 재래식 무기로 상대하면 북한은 그야말로 한주먹 감도 안 된다. 하지만, 핵무기를 개발하여 상당한 기술 수준에 올라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핵무기를 쉽게 쓸 수는 없지만, 그들이 발악하는 단계에선 핵을 집어들 수도 있으니 건들지 말라는 신호라는 해석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불리한 여당을 돕는 2중대 정당이 2개나 만들어졌다. 노쇠한 민주당은 입으로만 개혁을 외칠 뿐 별로 달라지고 싶은 생각은 없어 보인다. 개혁은 생각 속에만 있고 아마도 공천 결과는 ‘그 밥에 그 나물’일 듯하다.
이러다가는 지지율 30% 미만 대통령이 외려 힘을 얻어 독단이 더 심해지고 즉흥 정치가 이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스스로 고치지 못하고 언제까지 걱정을 끼칠 셈인지 답답하다.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불통이 더는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뜻에 따르지 않는 건 배신이다. 취임 이후 숱한 사고와 문제가 있었음에도 단 한 차례도 공식적인 사과가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오로지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말은 헛된 수사(修辭)였다.
60여일 남은 총선이다. 남은 과제는 새로 출범할 22대 국회를 제대로 구성하여 함부로 날뛰던 정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국민의 대표들이 비뚜로 달리는 정치의 고삐를 잡아 바로 가게 해야 한다. 그 모든 힘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책임 또한 국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