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 전주일보
  • 승인 2024.01.2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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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대표
김정기 대표

자다 깼다. 이른 새벽이다. 몇주 째 자다 깨어나 몸도 마음도 많이 상했다. 뒤척이다 신문과 방송에 눈과 귀를 모은다. 지난 30여 년 습관이다. 새벽 잠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아득한 영화제목이 떠올라 메모를 시작했다.

“제가 전주시설공단으로 전화했습니다. 시의회를 통과하면 주차비가 하루 4000원에서 6000원으로 올릴 계획이랍니다.” “그건 말이 안되지요. 이제껏 전주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했는데. 뉘 맘대로 차단기 설치하고 돈을 받겠다는 겁니까?”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 팔아먹기죠.” “우리 연습장에 2000명 정도 오는데 이번 시의원 못 찍게 할거요.” “00당이나 무소속 찍을 랍니다.” 지난 주말 산행 후 버스 속에서 산악회장이 ’전주빙상경기장 유료화 공사‘ 이야기를 꺼내자 회원들의 의견이 쏟아진다. 많이들 화가 나 있다.

전주 중화산동 화산체육관은 1997년 1월, ’97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주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화산체육관은 베드민턴 12개 장과 농구장으로, 실내빙상경기장은 빙상장으로 사용 중이다. 건축 당시 한강 이남에서 실내 빙상경기장으로는 처음이었다. 전주의 랜드마크가 됐다.

66만 전주시민들의 쉼터이자, 180만 전북도민들의 자랑거리다. 이른 새벽부터 시민들이 북쩍이는 운동 장소로. 결혼식·산악회·세미나·시위 등 모임 출발지로. 옆에는 매머드급 시립도서관도 자리했다.

위아래 주차공간을 일일이 세어봤다. 상부 주차장이 중소형 157면, 전기차 충전소 6면이다. 하부가 중소형 86면, 대형 2면이다. 도합 251면. 겹치기 주차해도 260대 안팎이다. 시민들이 부담해야 할 주차비다. 260대☓5천원(1일)=130만원. 130만원☓30일(한달)=3,900만원. 3,900만원☓12개월=4억 6천만원 안팎이다. 연수입 5억원도 안된다.

화산체육관 출입구 상하 2곳에 통제소를 설치했다. 견고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디지털 알림판, 진출입 차단기에 근무 공간까지. 작게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짜리 시설이다. 앞으로도 시설물 유지비와 인건비가 계속 들어간다. 전주시의회와 전주시는 진정 누구를 위한 시설물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인터넷에 ’주차차단기 설치‘를 쳤더니 수십개 업체가 뜬다. 가격은 비공개다. 주문자가 신상과 요구 조건을 입력해야 상담이 들어오는 방식이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오래전에, 전주종합경기장에는 얼마 전에 출입차단기를 설치하고 운영 중이다. 유행병처럼 사업자들 논리가 교묘히 먹힌 까닭이다.

맥없이 설치해 시민을 불편하게 하고 비용까지 내놓으라 한다. 길거리 불법주차로 내몰고 있다. 추가로 정읍·고창으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이용하는 국립전주박물관, 진안·장수 방향의 동전주 주차장. 그리고 임실·남원 방면 카풀 주차장에도 유료화 공사를 진행할 건지 의문이다.

완주군 구이면 상학마을에 모악산 도립공원 주차장이 있다. 수년 전 완주군은 시설물을 설치하고 주차비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그렇지만 지역 상가주민들은 “방문객 수가 크게 줄고 장사에 지장을 초래한다.” 격하게 반대했다. 콘크리트만 불편하게 남아있다.

역시 전북도청 남·북·서문 세 곳에도 출입 차단 시설을 몇 년 전 수억 원을 들여 설치했다. 유료화하지 않았다. 경관상으로도 영 아니다. 순창군 동계면 행정복지센터 앞 공용주차장. 한낮 점심시간인데도 널따란 주차장에 1대 주차. 여기에도 차단기만 만세하고 올려져 있다.

사업자들이 어떤 논리로 담당자들을 설득했을까? 심지어 대형교회 정문에도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재미있다. 재미가 재미에 꼬리를 문다. 누구를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원래 헤밍웨이 소설이다. 그렇지만 영화로 크게 성공했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게리 쿠퍼 주연의 흑백 영화다. 유럽과 미국의 많은 지성과 청년들이 ’민주주의 가치‘를 위해 공화파를 지원해 싸웠지만, 반란군 파시스트 승리로 끝난 스페인 내전 이야기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는 1939년에서 1975년까지 죽을 때까지 거의 40년을 스페인을 억압 통치했다. 여기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나왔다.

전주시설공단은 ’주차장 유료화 공사‘계획에서 ’경제적 수익·고용창출·공공질서와 안녕‘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설치이유를 들이댔을 것이다. 이중과세다. 지난주 막 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박람회에서 우범기 전주시장과 이기동 전주시의회 의장은 환하게 미소 짓는 사진을 시민들에게 보냈다. 드론월드컵박람회를 2025년 유치했다는 소식이다.

불과 몇 개월전 KCC전주 농구단 부산 이전으로 울분을 터뜨렸던 시민들이 많다. 보통 시민들의 소소한 행복을 전주시의 늑장 대응으로 빼앗긴 것이다. 대다수 보통 시민들은 등 가려울 때 등 긁어주는 이를 좋아한다. 커다란 담론보다는 작은 이야기에 감동한다. 되묻는다. 누구를 위하여 <사업자·직원·시장·시의장·시민> 종은 울리나.

 

#김정기(前 KBS전주 편성제작국장). KBS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3.1절 기획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 ‘한지’ ‘’백제의 노래‘ 등 30여 편의 다큐멘터리와 ’아침마당‘ ’6시내고향‘ 등 TV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사)천년전주한지포럼 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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