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시대, 사람의 몫에 대하여”
“인공지능의 시대, 사람의 몫에 대하여”
  • 김규원
  • 승인 2024.01.15 15: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상수상詩想隨想 - 47

 

요즘 아내는 외간남자 덕으로 산다

쓸어주고 닦아주는 남자 재미로 산다

 

지그재그청소를 시작하겠습니다

청소가 끝나면 워시통을 비워주세요

~

청소를 마쳤습니다

충전대를 찾지 못하여 처음의 위치로 복귀했어요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연일 참패하는 날도 그랬다

 

인공지능을 장착하지 못한 허수아비

외아들 허수마저 남의 나라 일터로 보낸, 아비는

영락없이 외간남자 눈치나 보다

던져진 바둑돌

 

-졸시아내의 남자전문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 연구진에 의해 개발된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의 바둑게임이 세간의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지금은 벌써 옛일이 되고 말았지만, 그 당시[2016]에는 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바둑 게임이었다. 사람 대 인공지능의 대결이라니, 그럴 만도 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인공지능의 역할이 일상화 단계로 접어들었으니, 강산이 변한다는 십년도 되지 못한 시점에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알파고대 천재 기사라는 이세돌’ 9단과의 바둑게임에서 이 9단이 1:4로 판정패했지만. 그의 창의적인 수로 알파고를 한 판 이긴 것만으로도 대단했다며.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성과를 평가한다. 9단이 게임 전에 다섯 판 중에 한 판이라도 진다면 내가 진 것이라며 자신감이 넘쳤던 보도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도 남을 만한 사건이었다.

이런 게임을 계기로 인공지능이 가져올 가공할 미래에 대하여 염려하는 특집 기사들이 넘쳐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컴퓨터와 결합한 IT기술의 발전이 불러올 미래에 대하여 궁금증과 함께 일말의 두려움마저 가지고 있는 이 세기적인 대결에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된 것은 당연하다. “이 대결의 승자는 알파고라는 프로그램도-이세돌도 아니다. 이런 세기적인 이벤트를 기획하고 실행하여 회사의 재산가치가 수십 조 달러로 상승한 구글Google가 진정한 승자다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형편이다.

인공지능이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집에는 얼마 전부터 인공지능 로봇진공청소기가 아내의 일손을 돕는다. 청소기를 작동시키면 부드럽고 친절한 남자 아나운서가 주인의 명령을 받들어 청소를 시작하겠다고 복창한다. 자체적으로 프로그램화 되어 있는 회로를 따라 방 구석구석을 뱅뱅 돌면서 먼지를 빨아내고 닦아낸다. 청소하다 장애물에라도 걸릴라치면 예의 그 충직한 남자[목소리]가 즉각 주인에게 알린다. “장애물을 제거해 주세요!” 청소가 다 끝나 자신이 머물러야 할 곳-‘충전대로 복귀해 소모한 에너지를 스스로 충전하기 시작한다. 충전대를 찾지 못하면 처음 청소를 시작한 곳으로 복귀하겠다고, 충직하게 보고하고 청소를 마친다.

청소기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최근에 보여주는 인공지능의 진화가 눈부시다. 먼지를 빨아내고, 물걸레 청소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빨아낸 먼지와 쓰레기를 자체에 마련된 쓰레기통에 비우기까지 한다. 청소하다가 청소기 내에 물이 부족하면 거치대를 찾아가 스스로 물을 공급받고, 스스로 알아서 물걸레를 빨고, 빤 물걸레는 건조까지 시킨다. 사람이 할 일은 물통에 물을 공급해 주는 것, 모아놓은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주부는 물론 누구라도 매일 되풀이하는 청소는 피하고 싶은 중노동이다. 또는 그렇지 않아도 인생이 허무하고 시들해 심심파적거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로봇진공청소기는 기계 이상의 메시지를 던져주고도 남음이 있다. 청소가 됐건, 식사 준비가 됐건 아내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도움은커녕 삼식이새끼소리나 듣지 않으면 다행인 요즘 남자들에게는 아내의 손발이 되어, 아내로부터 사랑받는 미성의 남자 목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리곤 한다. 고된 가사를 아내에게만 맡기는데 대한 미안함도 적지 않았던 터라 외간남자 덕을 보고 사는 것이 그리 싫지 않다. 이 목소리를 통해서 남자의 소외를 넘어 인간 소외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필자만의 과민일까?

요즈음 웬만한 식당에 가면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이 음식을 나르는 것이 목격된다. 과학기술이 일상화된 모습을 보는 느낌은 신기함을 넘어, 식당 운영비가 크게 절감될 거라는 수지타산을 넘어, 이러다가 사람의 일자리마저 로봇에게 빼앗기는 게 아니냐며 경제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걱정을 넘어, 인공지능의 시대는 왔다. 마땅히 가져야 할 의문은 바로 인간 소외의 문제다. 바둑게임처럼 사람이 던져진 바둑돌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 과학기술과 인간 사이의 게임은 삶의 현장마다 돌이킬 수 없는 형국을 빚어낸다.

인공지능 관련 석학들의 견해도 긍정론과 부정론이 공존한다. “인공지능이 킬러로봇처럼 인류를 파괴할 수 있다.”[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고 보는 반면, “인공지능이 세계 불균형을 해결할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빌 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고 보기도 한다. 결과야 어떻든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몫에 충실해야 하는 게 우선순위일 것이다.

10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며 FM라디오를 튼다. 어느 주부가 보낸 메시지를 남자 아나운서가 소개한다. “퇴근 후 지금까지 동동거리다 이제야 자리에 누워 봐요. 한 손길도 도와주지 않은 우리 집 남자들, 길을 잘못 들인 내 탓을 해야지 어쩌겠어요?” 이어서 아나운서가 그런다. “다음에는 그 남자들 이름을 보내주세요.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혼내 주겠습니다! 요즘에도 그런 남자들이 목숨을 유지하고 생존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