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처럼
모악산처럼
  • 전주일보
  • 승인 2024.01.0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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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대표
김정기 대표

지진 뉴스다. 새해 첫날. 일본에 7.6 강진이 들이쳤다. 이시카와(石川)현 노토(能登)반도다. TV화면에 무너져내린 건물들과 ’지금까지 사망 128명, 연락두절 195명‘ 자막이 뜬다. 참혹하다.

20여 년 전 ’이시카와현은 전라북도‘와 현 중심도시 ’가나자와(金澤)는 전주시‘와 자매결연을 했다. 2012년, KBS전주는 NHK가나자와 와 자매결연을 하고 이번 지진 진앙지인 노토반도의 와지마(輪島)시를 방문하였기에 더욱더 놀랍다.

저녁때 가나자와에서 식사 자리. “가나자와(金澤, 못택)는 ’금이 나오는 연못‘ 뜻이기에 금박(金箔)도시가 되었나요?” 수긍하는 분위기다.

“전주에는 모악산이라는 영산(靈山)이 있는데 금이 나오는 금산(金山)입니다. 전주는 산이고, 가나자와는 연못이네요∼” 다들 와∼ 탄성이다. 순발력으로 늘여놓은 즉석 해설이었다.

모악산(母岳山). 금산사지에 따르면 ’엄뫼‘라는 말은 아주 높은 산을 말한다. 한자로 ’엄뫼‘는 어머니산이다. 의역해서 ’모악‘이라 했다. ’큰뫼‘는 ’큼‘을 음역하고 ’뫼‘는 의역해서 금산(金山)이라 적었다.

전주 중인동에서 청하서원 능선길로 오르면 1시간 반 정도 걸음 후 매봉에 이르게 된다. 매봉에서 내려다보는 금산사 쪽 능선을 따라 원평이 있는 금산(金山)면. 오른편에 금구(金溝), 금평(金坪). 그리고 조금 멀리 김제(金堤)가 자리하고 있다. 모두 금과 관련된 지명이다. 실제로 모악산에는 산금(山金)이, 원평천·두월천에는 사금(砂金)이 나왔다.

“미쯔비시가 일제강점기 때 오른 능선 쪽으로 금을 캐 갔데야, 금구 쪽에 여름에 찬 바람 나오는 냉굴도 있잖아.” 등산객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다. “여기서 좌우로 금맥이 갈려, 신기하게도 저 주봉 쪽으로는 금이 나오지 않거든.”

매봉 아래로 처음 접하는 마을이 백운동이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사이 용화교와 증산교 신도들이 모여 산 곳이다. 한국신흥종교의 본산이었다. 아직도 신도들이 재배한 뽕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옛 기록에는 “모악산에 무려 80여 개 암자가 있다.”고 전한다. 지금은 얼추 헤아려도 심원암·청련암·대원사·천일암·금선암·귀신사 등 20여 개 정도다. 한국 미륵신앙의 기도처가 곳곳에 있다. 미륵신앙이나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여러 신흥종교의 집회소가 있다.

금산사에는 다른 사찰에 없는 유일의 미륵전(彌勒殿)이 있다. 미륵은 한국판 메시야다. 모악산은 너른 호남평야 중심에 우뚝 선 ‘나홀로 산’이다. 전북지역 어느 곳에서도 이정표 역할을 한다. 수천년 동안 전북 산하를 지켜왔고 전라도민을 먹여 살려왔다. 전라도를 품은 어머니 산이다.

“모악산보다 안 높아∼ 더 오르기 쉬어” “지리산 천왕봉도 모악산만 오르면 갈 수 있어.” 흔히 타지역 산행할 때 전북사람들이 하는 대화다. 산의 높낮이도, 오르기 어려움도 모악산과 비교하면 그만 끝이다.

모악산은 전북인들 모두에게 세상 척도의 기준이다. “건강이 나빠서 모악산 오르기 백일만에 극복했다” “매일 새벽 모악산 등산으로 몸도 사업도 성공했네∼” 등 주변에서 ‘모악산 산행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다음주 18일.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한다. 방송에서 17일 밤 전북도청광장에서 전야제로 축하한다는 광고다. 연예인 대거 출동. 벌써부터 도청뿐 아니라 도교육청도 명패를 바꿔 설치했다. 거리에는 배너도 나부낀다. 이미 제주도와 강원도가. 또 세종시가 특별자치시로 출발했다. 

그렇지만 대다수 도민들은 언론을 통한 수많은 홍보에도 ‘특별자치도’에 잘 모른다. 어떤 정책이, 어떤 혜택이 우리에게 주어지는지, 미치는지 알지 못한다.

전북은 지난 12월 새만금 예산 3천억 원을 추가 확보했다. 언론 홍보와 함께 2년 연속 9조 원 시대를 열었다고 크게 자축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예산 9조 1,595억 원에서 올해 9조 163억 원으로 1.56%가 삭감되었다. 전국 9개 광역도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증감률을 기록한 것이다. 초라하다.

이웃 충남이나 전남을 들여다봐도 12.18%, 10.63%로 증가했다. 전국 꼴찌다. 그런데도 특별자치도 출범과 9조 원 시대라 떠들어 댄다. 새만금 7천억 원 삭감에서 이 정도로 살려냈다 으스댄다. 그건 아니다. 겸손하게 사과하고 출발해야 한다.

한편 자매결연도시 일본 이시카와현 지진 피해에 위로의 전문이라도 보냈는지 궁금하다. 어려울 때 연대가 진정 친구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법이다. 지구화, 글로컬의 완성은 이럴 때 이루어진다.
 
지난 3일, 도정 신년 기자회견. 전북 2024년 큰 그림을 제시했다. 장밋빛 청사진이다. 근데 디테일이 부족하다.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에서조차 약자를 위한 차별화된 정책이나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연구하겠다. 지시했다”는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하다. 어려운 때일수록 동지(同志)다. 지금 전북에는 모악산처럼 자상한 엄마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김정기(前 KBS전주 편성제작국장). KBS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3.1절 기획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 ‘한지’ ‘’백제의 노래‘ 등 30여 편의 다큐멘터리와 ’아침마당‘ ’6시내고향‘ 등 TV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사)천년전주한지포럼 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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