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는 것”
“참사랑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는 것”
  • 김규원
  • 승인 2024.01.08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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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 46

 

 

하늘이 여자와 남자를 나란히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신통한 일이다

하긴 못하는 일 없는 하늘이니 그랬겠지만

노상 지아비만 올려다보는 지어미에게

눈물도 웃음도, 아무렇지도 않게 기별하는

바늘 없는 시계이고 보니

밤을 벌거벗기는 일이나,

낮에 휘장 치는 일쯤이야

 

천지광명 지아비 조명발에

배시시 웃음 짓는 지어미 모습이

볼수록 아득해서 맑다

 

-졸시낮달전문

 

 

사랑에 관한 정의는 모두가 참일 것이다. 누가 하는 말이든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면 그게 참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사랑에 관하여 왈가왈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남대문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 남대문 문지방이 대추나무네, 참나무네 우기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정의가 대중들의 환영을 받게 되었나 보다. 왜냐하면 사랑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슬픈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랑에 관한 잠언은 많기도 하다. 가장 흔한 것이 참사랑은 둘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정설이 널리 퍼져 있다. 이 말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싸하다. 남남으로 만나서 서로가 화목하고 화합하여 일심동체가 되었을 때 참사랑이 가능하다고 보면 그도 일리 있는 말이다. 반드시 부부관계에만 국한해서 볼 일도 아니다. 주체가 객체를 사랑하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 세력이 만만치 않다.

 

사해동포주의자들에게도 이런 발상을 들을 수 있으며, 요즈음 특히 반려동물을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주 듣는 말이다. 피부와 이념과 종교와 국적을 초월하여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인류애라고 보는 주장에도 하나 되는 사랑의 정의가 충만하다. 반려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에게서 애완동물은 인간과 다른 종이 아니라, 바로 내 새끼요, 내 자식이며, 내 형제로 부르고 대우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이들은 한결같이 참사랑은 둘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길이라고 믿고 실행할 뿐이다.

 

사랑에 관한 잠언 중에서 사랑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서 완전체가 되는 것이라는 의견도 많은 지지를 받는다. 원래 창조주가 남녀를 한 몸-자웅동체로 만들었으나, 사소한 일들로 다툼이 심해서 일부러 떼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반쪽을 애타게 찾아 헤매고 다니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 참사랑은 잃어버린[불완전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찾아 완전체[한 몸]이 되는 것이라는 주장은 사랑의 정설이 될 만하다.

 

사랑은 둘이서 서로를 마주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정의도 많이 회자된다. 이것 역시 서로 다른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참사랑이라는 뜻과 괘를 같이 한다. 하긴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응시하듯이, 자기주장만 앞세워 상대에게 강요한다면, 이 또한 참사랑의 길이 아닐 것이다. 하나가 되었듯이 이제는 서로의 주장을 접고 공동의 목표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참사랑의 길이라는 뜻에서 공감이 간다.

 

어느 맑은 날 하늘을 보니 낮달이 떴다. 으레 생각하기를 달은 밤에 떠야 제격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하려는데, 해님의 배웅을 받으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낮달의 이미지가 낯설지 않았다. 해님은 낮을 밝혀 주는 양기로서 남성성을 상징하고, 달은 밤을 지키는 음기로서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관념으로 굳어졌다. 그래서 음양이기설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 해와 달이다. 그래서 해와 달은 이성지합-부부결합의 상징물이 되어, 해는 지아비, 달은 지어미가 되어 생성의 모티브가 되었다.

 

그런데 대낮에,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낮달이 동시에 떠 있다. 지아비의 세상인 대낮에 감히(?) 지어미가 나타나서 공존하려 한다. 해는 낮을 지배하고, 달은 밤을 지배한다는 원칙을 깨뜨린 낮달이 괘씸할 법도 하다. 그럼에도 해님과 낮달은 서로 지켜야 할 거리를 유지한 채 천지광명의 조명을 뿌린다.

 

또한 하늘은 양기이니 지아비이고, 땅은 음기이니 지어머니라는 원형관념도 오래된 내력을 지닌다. 누가 가르치 지 않고 손에 쥐어주 지 않아도 인류는 하늘의 조화와 땅의 반응을 온몸으로 견디면서 터득한 지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사랑의 정의를 조금 수정할 필요를 느낀다. 사랑이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라면, 해님이 달님을 만나 하나가 되어야 하고, 하늘님이 땅님을 만나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이는 매우 끔찍한 천재지변일 터이다. 천재지변을 견디고 살아남을 사랑은 없다. 참사랑이라면 해님은 해님답게, 달님은 달님답게 따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 하늘님은 하늘님답게, 땅님은 땅님답게 적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만나서 하나가 되는, 천재지변 같은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면에서 둘이 되는 것이다.”[알랭 바디우 1937~ 프랑스 철학자] 사랑은 진짜 둘이 하나가 아니라 둘로 서야 한다. 둘이 따로 설 때 사랑의 꽃이 핀다. 사랑은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널 주인공으로 만들면, 너도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의 관계에서 이타심은 이기심이다. 사랑하면서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헌신하는 것은 그 헌신이 나에게 되돌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나, 잃어버린 반쪽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각자의 방향을 응시해야 한다.

 

지어미가 지아비의 눈부신 광채 때문에 제대로 사랑의 눈을 뜰 수 없는 것을 참사랑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지아비가 지어미의 지극한 헌신과 희생으로 유지되는 삶을 참사랑이라고 왜곡하지 말자. 사랑은 서로 다른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참사랑은 서로 다른 둘이 서로 다른 삶[생각+행동]을 존중할 때, 하늘에 뜬 해와 낮달처럼 뚜렷할 때, 우리의 삶이 천지운행의 한 몫을 겨우 감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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