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해 열린 새해, 2024년!”
“자유를 위해 열린 새해, 2024년!”
  • 김규원
  • 승인 2024.01.01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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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상詩想隨想 - 45

 

겨울 한복판

북방 손님들이 측은지심 주위에 모여

저마다 내뱉는 이바구로 소란하다

무슨 못 볼 것을 그리도 많이

보았다는 지, 눈이 뻘겋게 충혈 되어

깃을 세워 활개 치는 어떤 날개는

두 팔을 십자가처럼 활짝 벌리고

목이 터져라, 꾸짖듯이

하소연하듯이

피를 토하듯이

만자 중에 왜장쳐 고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북방 오리들 말을 새겨듣자니

오지 마란다고 오지 않는 게

자유이겠느냐며,

꾸짖듯 항변하듯 피를 토하듯

 

-졸시겨울철새의 숨구멍전문

겨울 호수에 갔다. 자그마한 겨울 호수는 온통 빙판인데, 호수 한복판만 얼지 않은 채 잔물결이 인다. 안쓰러운 물결이 겨울 호수의 숨구멍처럼 잔잔하다. 이 작고 둥그런 부동의 잔잔한 출렁임이 겨울을 살아낼 수 있는, 겨울을 버텨낼 수 있는 숨구멍이라는 듯……

 

겨울 철새들이 그 호수의 숨구멍 주위에 빼곡히 모여 있다. 날갯죽지에 주둥이를 묻은 채,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북방으로 돌아갈 날들을 점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사방 주위에서 자신들을 노리는 사냥꾼들의 동태를 망보는 것일까?

 

겨울 호수 한복판이 마치 호수의 숨구멍이라도 되는 듯하다. 그곳마저 얼어버리면 호수는 숨을 쉴 수 없을 것이다. 하긴 호수도 숨을 쉬어야 비로소 살 수 있을 터인데. 아무리 넓은 호수라도 그 호수의 어느 곳인가는 절대로 얼어붙을 수 없는 숨구멍을 내놓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혹한 겨울 추위를 견뎌내고,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은지심이 겨울에도, 호수에도, 겨울 철새에게도 마땅히 있어야 한다.

 

북방에서 날아온 철새들은 호수의 숨구멍 주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느라 소란하다.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리도 많은 것인지, 하기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들, 기억하자고 서로 다짐해야 할 목격담들, 잊지 말아야 할 장면들, 전해주어야 할 북방의 소식들이 어찌 한둘이겠는가?

 

그중에서도 목불인견[目不忍見-눈 뜨고 차마 볼 수 없음]이라고 했다. 생명을 가진 자가 다른 생명을 향해 포탄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인지? 그것도 생명들이 집단으로 사는 고층 아파트를 향해 미사일을 쏘아댈 수 있다는 것인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타인을 해쳐도 좋다는 것인지? 도무지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북방에 살던 청둥오리들은, 가창오리 떼는, 흑두루미 재두루미들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살육전을 신물 나게 보았을 것이다.

 

저들의 세계에도 다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입의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발톱을 세우기도 하지만, 한쪽이 빼앗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좋은 먹이 터를 차지하기 위해 날개를 펴고 결기를 세우기도 한다. 그래도 한편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면 그것으로 끝이다. 또는 건강한 후손을 남기려고,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뿔을 치받고 피를 흘리며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힘이 부친 쪽이 달아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지구 끝까지, 혹은 삼족을 멸할 때까지, 또는 종족의 피를 말릴 때까지 샅샅이 뒤져 도륙하지는 않는다. 푸른 별에 함께 생명을 나누는 누구들처럼 그렇게 지악스럽게, 일방적으로 끝을 보려 하지 않는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과학기술이 동원되어 개발한 최첨단 신형무기를 대도시에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인지?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어린이 노약자 여성들인데도 그들을 살상하고도 승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인지? 사람의 눈을 뜨고 차마 볼 수 없는 참혹한 경지라면, 저들 철새들의 눈이라고 해서 그냥 그 참상을 마주할 수 있었겠는가!

 

사람 사는 세상도 그런 숨구멍이 필요하다. 아무리 겨울이 가혹하다 할지라도, 아무리 천지사방이 적의로 가득하다 할지라도, 숨 쉴 수 있는, 절대로 얼어붙을 수 없는 숨구멍은 있어야 한다. 피난처이자, 안전 쉼터이자, 자유 공간이 필요하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어디에도 있어야 한다. 은 슬퍼하거나 진심을 다한다는 뜻도 있지만, 헤아린다, 안다, 잰다는 측의 뜻도 함축하고 있다. 은 숨다, 가리다, 비밀로 하다는 뜻도 있지만, 은통隱痛이라 하여, [남의 슬픔이나 고통을]함께 아파하다, 슬퍼하다, 괴로워하다는 뜻도 담고 있다.

 

남의 슬픔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자신의 슬픔의 바닥에 닿을 수 있다. 남의 슬픔에 동참하는 일, 남의 비극을 보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은 결국 제 서러움때문임을 우리는 안다. 내 가슴 안에 슬픔의 인자[비극의 씨앗]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이 온통 사냥꾼 천지라면 어디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아무리 가혹한 겨울에도 호수 한복판은 얼지 않은 채, 잔물결을 일렁이며 겨울 빈객들에게 허용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호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삿대질하는 손가락이 하나라면, 나를 향한 손가락은 넷, 이곳이 바로 겨울에도 얼지 않는 호수의 숨구멍이다.

 

날개를 접는다, 쉰다는 것은 삶의 여유를 비축하는 일이다. 저 철새들이 북방으로의 비행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느라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동안, 북방에도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북방은 생명 있는 존재들에게는 언제나 가혹한 어떤 곳이다. 그곳에 이르기 위하여, 가혹하지만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기에 북방을 꿈꾸며 잠시 날개를 접는다.

 

북방의 봄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은 바로 그대 가슴에서 날개를 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생명 있는 모든 존재에게 그대는 바로 숨구멍의 변형이 된다.

 

숨구멍은 총구를 피할 수 있는 어떤 곳이며, 측은지심의 실체다. 겨울이 끝나가는 무렵, 호수의 숨구멍도 사라지겠지만, 또한 북방에도 봄이 오고야 말 것이다. 분단의 현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새해 새 봄이 오기를 바란다면 조금 나아간 듯하지만, 누가 알 수 있으랴, 무궁하게 변용하는 시심의 기제를, 그리고 뜻 있게 열리기를 기다리는 2024년 새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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