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에도 호남지방엔 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보도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올해는 눈이 자주 내린다. 성탄절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화이트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다.
눈을 감으니, 산천에 눈이 하얗게 쌓인 고향땅 앞동산이 성큼 다가선다. 내 고향 장수 장계는 눈이 많은 지역이다.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소백산맥으로 내려오다가 덕유산에 이르고, 남덕유산과 장안산이 품 안는 곳이 내 그리운 쌈터다.
전주와는 기온 차이가 5도나 되고, 예전에 눈이 많이 내릴 땐 허벅지까지 쌓였다. 자동차 길이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한 채 꽁꽁 묶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뚫리어 40분이면 갈 수 있다. 나이가 들어도 눈 속에서 즐겼던 눈썰매, 나무스케이트, 토끼몰이 등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지금도 신이 날 정도로 즐겁다.
친절하게도 국민비서로부터 건강검진을 올해 안으로 마쳐달라는 문자를 두 차례나 받았기에 일찍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생각보다는 눈이 적게 내려서 안심되었다. 공복으로 오전 8시까지 오라기에 서둘렀다.
집 밖에 나섰더니 빙판길이어서 모두들 오리걸음이다. 버스도 학생들과 출근길 사람들로 만원이라 콩나물시루를 경험하는 건 괜찮았으나 힘이 들었다. 한 시간 남짓해서 검사를 마치고 나니 배가 고팠다.
두 시간 넘게 활동한 탓에 그러지 싶다. 집으로 돌아가고자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먼발치서 꼬마가 허리를 굽혀 땅바닥을 유심히 살피는 게 눈에 띄었다. 궁금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굽어보니 멥새 한 마리가 얼어 죽어 있었다. 눈이 자주 오고,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면서 먹질 못해서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정류장에 이르니 마침 버스가 도착해 올랐는데 한산하여 좋았다. 자리에 앉아서도 멥새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며 측은한 생각과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착잡했다. 비록 하찮은 멥새의 주검이지만 불쌍하게 춥고 배고파서 죽었을 거라는 가여운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며, 70여 년 전의 기억이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들었다.
겨울에 눈이 몹시 내린 날이었다. 어머니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담 옆 마당 한쪽에 눈을 치우고 닭 모이로 모아두었던 좁쌀을 한 종기 퍼서 뿌려놓았다. 순식간에 처마 밑 둥지나 나뭇가지에 떨고 앉았던 참새 수십 마리가 내려와 쪼아 먹었다. 그 요란한 참새들의 아침 잔치는 지금도 내 머릿 속에 생생하다. 그 때, 어머니께서 내게
“눈이 많이 오면 새들도 굶는단다. 그래서 내 집에 오신 손님처럼 먹이를 줘야해!”
라고 하셨다.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매우 기뻤다. 일찍이 어머니가 몸소 행하시던 ‘나눔’을 오늘 새롭게 가슴에 새기며 다신 잊지 말 것을 다짐해 본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잠시 비몽사몽하는 동안 버스가 원광대한방병원 사거리를 지나는 순간이다. 비둘기 10여 마리가 인도에서 노닐다가 위험하게도 자동차 주행로에 날아들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도로에 먹잇감이 있어 그랬을 터지만, 아슬아슬하게 피해 달아났으니 망정이지 가슴을 쓸어안아야 했다. 먹고 살고자 하는 행위였으리라. 이 또한 눈 때문에 길거리로 나왔지 싶다.
버스에서 내려 J 중학교 담장을 끼고 돌아서는 데, 중학생쯤 돼 보이는 여자애가 길고양이에게 점포에서 사온 사료를 주고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 했는지 새끼를 밴 어미 한 마리와 색깔이 검정인 큰 놈이 태연하게 받아먹고 있었다.
요즘 우리 아파트 주위엔 그렇게 칙사 대접을 받는 고양이가 예닐곱 마리 된다. 이들 고양이는 여러 가지로 혜택을 누리는데, 비둘기는 어쩌다 그렇게 위험스런 먹이 사냥을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이 또한 저마다 살아가는 또 다른 생존의 모습이 아닌지······.
조금 전 날아올랐던 비둘기가 생각나서 건지산 장군봉을 바라보니 눈이 많이 쌓였다. 문득 지난 가을에 보았던 꿩 한 쌍이 머릿속을 스친다. 이 엄동설한을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