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걷기
맨발 걷기
  • 김규원
  • 승인 2023.12.14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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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수필
최규풍/수필가
최규풍/수필가

창밖은 아직 어두운 어둑새벽. 똑똑. 살며시 문이 열린다. 아내다.

“안 나가요?” 안방에서 나온 아내가 학교 운동장에 가자는 말이다. 일찍 잤기에 세 시에 잠 깨는 게 습관이다. 양말을 벗고 물놀이용 신발로 나간다.

목표는 열 바퀴다. 마음에 내키면 다섯 바퀴 추가다. 운동장은 굵은 모래와 잔자갈이 있어서 발바닥이 따끔하다. 그래도 참고 걷다 보면 오히려 시원하다.

맨발 걷기가 유행이다. 공원에 나가면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다. 열에 아홉은 여자다. 나는 백수인지라 시간을 내어 여자들 틈에 끼었다. 왜들 맨발로 걸을까?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맨발 걷기가 몸에 좋다는 사람이 있었다. 몸이 아팠는데 꾸준히 걸었더니 아픈 데가 나았다고 했다.

유튜브에서 어떤 의료인은 이명증, 난청, 당뇨, 허리디스크, 피로, 소화불량, 아토피, 황반변성, 협심증, 고혈압, 고지혈증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니 이명을 비롯해 몇 가지가 해당하는 나로서는 귀가 솔깃했다.

올해 7월부터 운동화를 벗었다. 반 시간도 좋고 한 시간도 좋다. 처음 장소는 공원의 편백 숲이다. 둥글게 돈다. 열 바퀴도 돌고 내키면 스무 바퀴를 돌았다. 나무 그늘이 시원하고 편백의 피톤치드로 상쾌하다. 한여름의 불볕더위도 편백 숲은 뿌리친다. 에어컨에 물린 이들이 오아시스 같은 천혜의 피서지를 외면할 리 없다. 너도나도 달려와서 신을 벗는다.

작은 구릉의 거칠던 바닥이 반질반질해졌다. 길은 다져지고 넓어지고 나무뿌리가 드러났다. 얼마나 아플까? 짓밟힌 뿌리를 덮어주고 싶다. 시청 직원이 ‘자연보호’, ‘저에게서 멀리 떨어져 주세요’라고 호소문을 나무마다 매달았다. 건강도 좋지만, 숲을 훼손시키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나무들에 미안하다. 나부터 멈추고 싶다.

가까운 중학교 운동장으로 바꾸었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나간다. 모래와 자갈 때문인지 도는 사람이 드물다. 마음 놓고 활보한다. 새벽달과 샛별이 나를 응원한다. 서리가 내리고 너무 춥다. 아내와 상의해서 초저녁에 돌기로 했다. 새벽보다 낫다.

원시인과 달리 현대인은 두툼한 양말을 신고 푹신한 신발에 얼마나 발이 따뜻하고 안전한가? 도시인은 흙과 멀어지고 흙을 밟을 시간도 사라진 지 오래다. 좀처럼 걷지 않는다. 자동차로 달리고 하늘을 날고 킥보드를 탄다. 도시는 황토 대신에 시멘트와 아스콘 길이다. 흙이 주는 간지러운 촉감과 촉촉한 부드러움을 어찌 누릴까?

어느 한의사의 말로 발바닥에는 신체의 모든 경락이 집중되어 있다.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이 후끈하다. 4개월 동안 맨발 걷기를 했더니 지압 효과인지 몸이 가볍다. 정신이 맑아지고 잠도 곤하다. 입맛도 좋고 소화도 잘된다. 혈압 수치가 떨어지고 혈당 수치도 낮아졌다. 늘 다니는 내과의 L 원장이 미소를 지으면서 혈액 검사 결과를 설명했다.

 ‘수치가 상당히 내려갔으니 이제는 혈압과 당뇨약을 한 단계 낮추어도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약을 순하게 처방했다. 맨발 걷기의 선물일까? 검증되지는 않았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어떤 한의사는 ‘맨발 걷기는 노화의 주범인 활성 산소를 줄이고 염증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듣기만 해도 놀랍다. 질환의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하니 솔깃하다. 

치유의 기적이 있건 없건 밑져야 본전이다. 누워지내는 것보다 걷는 것이 몸에 이롭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걷다가 넘어지면 골절상을 입는다. 특히 당뇨 환자는 발에 상처가 나면 위험하다. 기생충 감염이나 파상풍에 걸릴 수도 있다. 갑자기 찬바람에 혈관이 파열될 수도 있다. 다치지 않아야 한다. 안전이 첫째다.

맨발로 걷는 게 규칙이 되었고 즐겁다. 안 나가면 좀이 쑤신다. 아내는 하루쯤 쉬라고 한다. 비가 와도 우산을 챙기는데 쉬다니 안 될 말이다. 오래 살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갑자기 쓰러져서 자식에게 짐이 되는 것을 피하고 싶다.

설사 내 마음과 달리 어느 날인가 불행이 닥쳐서 가족에게 짐이 되더라도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싶다. 1년이건 3년이건 하루 한두 시간씩 맨발로 걸을 생각이다. 맨발로 스스로 걸을 수 있는 날까지 열심히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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