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의 행복
천원의 행복
  • 전주일보
  • 승인 2023.12.1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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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대표
김정기 대표

12월12일.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한 날이다. 1979년. 12.12사태. 44년 전 쓰린 역사를 다룬 ‘서울의 봄’이 벌써 관객 700만을 동원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았다.”는 평을 남기고 있다. 전주의 극장가뿐 아니라 김제·임실·진안 등 도내 ‘작은 영화관’에서도 큰 인기다. 

아울러 농촌주민의 ‘볼 권리 지킴이’로 ‘작은 영화관’ 만족도가 극히 높다. “어푸 어푸∼ 시원하다.” 자주 가는 사우나 풍경이다. “안추워요? 나는 차서 못들어가겠구만 젊은 분이 안추운 게비네.” 이날 목욕탕에 처음으로 오셨다는 연세 지긋한 노인이다.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것저것 물으신다.

행정안전부 목욕장업 자료를 보면 목욕탕 수가 정점을 찍은 건은 지난 2004년 3월이다. 전국적으로 영업 중이던 목욕탕은 9,970 곳으로 1만 곳에 근접했다. 그러다 점차 줄어, 올해 들어 지난달 말에는 5,991곳으로 감소했다. 특히 전통적 목욕탕인 공동탕은 2004년 8,795곳에서 4,350곳으로 감소했으니 반토막이 났다.

17개 시도별로 보니 목욕탕이 가장 많은 곳은 경남 820곳으로 인구 4,000명 당 1개꼴이다. 이어 경기·부산·서울·경북 순이다. 인터넷 네이버 지도나 다음에 소개된 전주의 목욕탕 수는 지난해 말 50개. 인구 66만명으로 환산해도 목욕탕 1곳당 13,200명이 이용한다.

타시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이른바 ‘씻을 권리’도 박탈당한 기분이다. 현재 대한민국 65세 이상 820만 명. 2024년 내년은 노인 천만 명 시대가 열린다. 인구 다섯 중에 한명이 노인이다. 

보건복지부는 “노인 1인가구 빈곤율이 70.3%로, 생계급여나 기초연금을 빼면 88.9%에 이른다.”고 2020년 450만 가구를 분석한 자료를 발표했다. 1년 동안 시장소득은 436만 원에 그쳤다. 월수입 36만 원에 불과하다. 하루 수입 만원이다.

전라북도는 지난 김완주 도정 시절 ‘작은 영화관’을 선보여 전국적으로 히트 쳤다. 인구가 적어 영화관이 없는 도내 시군에 영화관을 개설했다. 문화 소외지역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문화향유권을 돌려주었다.

이어 전라북도 ‘작은 시리즈’로 사업이 확대되었다. 영화관에 이어 ‘작은 목욕탕’ ‘작은 도서관’으로 주민들의 반응이 좋다. 정부도 국가사업으로 채택해 추진 중이다. 지난 9월에는 고창군 흥덕면에 작은 목욕탕이 개장했다.

지난 4월 대산면에 이어 공음·해리면까지 고창지역에서만 네 번째다. 20여 년 전인 2001년 무주군은 전국 최초로 안성·무풍·부남·설천면에 목욕탕을 지은 뒤, 천원에 이용하도록 했다. 진안·장수·임실·김제·익산·정읍 등 도내 대다수 시군에서 목욕시설이 따로 없는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이다. 전라북도는 내년까지 모두 50개의 작은 목욕탕을 지을 예정이다.

“요즘 가뜩이나 추운디 뜨끈뜨끈한 탕에 담그면 그냥이지.” “여그는 사람들이 없응게 홀숫날은 남자만, 짝숫날은 여자만 다니지∼ 그래도 집에서 씻는 것보다 훨씬 좋지.” 주민들 평이다. 어떤 지역은 월수금 남탕, 화목토 여탕 이렇게도 운영한다. 작은 목욕탕 요금도 대체로 아동 천원, 65세 이상 1,500원, 일반 3천원으로 행복을 듬뿍 주는 주민사랑방이 되었다. 고물가시대 천원의 행복이다.

최근 전주시는 대중목욕탕과 숙박시설에 대한 빈대 방지 점검을 했다. 언론에서 프랑스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빈대가 나온다는 뉴스 때문이다. 대중시설 청결 서비스 차원으로 진행했다. 왠지 아쉽다. 전라북도 14개 시군에서 유일하게 작은 목욕탕이 없는 곳이 전주시다. 전북 도청 소재지 전주시민들이 오히려 13개 시군 주민들 보다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못 받는 형국이다. 노인 가구나 빈곤층 가구에 복지 사각지대가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 저소득층 대부분이 20%나 소득이 줄어 지갑을 닫았다는 뉴스다. 소득이 줄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게 식음료비와 난방, 목욕 등 ‘절대비용’까지도 싹둑 없앤다. 여야는 내년 총선 공약 1호로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와 노인 일자리 참여를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큰 그림이다. 그렇다면 생활전선의 작은 그림은 지방 정부에서 수용자들이 부끄럽지 않게 조용히 그려야 된다. 66만 전주시민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어림잡아도 13만 명 수준. “3천 원이면 아침에 병원 가서 뜨거운 찜질하고 차까지 마시고 오는데, 목욕탕이 9천 원이면 부담이 너무 크지∼” 노인들과 저소득층 시민들은 씻을 권리조차 쉽게 포기한다. 

아직 본격 겨울이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전주는 벌써 한겨울이다. ‘겨울복지’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있다. 겨울이 유난히 추운 사람들이다. 곧 성탄이다. 그동안 김장이나 연탄 돕기 등 겨울철 이웃돕기 사업들은 관행처럼 민간들이 움직였다. 그렇지만 도내 타 시·군민이 누리는 ‘천원의 행복’을 전주시도 아우르는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 
 


김정기 대표(前KBS전주 편성제작국장). KBS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3.1절 기획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 ‘한지’ ‘백제의 노래’ 등 30여 편의 다큐멘터리와 ‘아침마당’ ‘6시내고향’ 등 TV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사)천년전주한지포럼 대표로 ‘한지알림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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