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전북인
디아스포라 전북인
  • 전주일보
  • 승인 2023.11.2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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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대표

베르사이(Versailles) 아침이다.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와 ‘베르사유궁’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파리 근교 작은 도시다. 지난 닷새간 오다 그치다 가을비로 질척거린다. 빗속 마을 등굣길 대부분이 무슬림 아이들과 부모다.

“프랑스 전체 국민이 6천만인데요. 그중 모로코·알제리·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출신이 600만 명이 넘어요. 여기서 북아프리카사람 2등, 아시안이나 한국인은 ‘3등 시민’이에요.” “저도 디아스포라(Diaspora) 인가요?”

어느 사이 이주민 문제에서 디아스포라까지 대화가 옮겨갔다. 남원 출신 프랑스 베르사이한국문화협회 권 회장 이야기다.

“긍게 깨벗겨서 씻기지요. 춥다 허믄 등글짝 때려감서 목간 씻기지.” 2001년 백두산 자락 무주촌(茂朱村). 김제 출신 할머니 육성이다. 다섯살 때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만주 간도로 반강제 이주당한 중국교포 1세대다.

“바닷가 집, 감남구(나무)가 있었고. 감남구∼ 거까지 밖에 기억이” 2005년 1월. 동토 러시아에서 만난 할아버지다. 어릴 때 부모님 따라 고향(부안 추정)을 떠나 함경도로 갔다가 연해주로. 다시 스탈린의 강제 이주로 중앙아시아 아랄해 근처에서 평생 농사짓고 살았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 볼고그라드로 또 수천 킬로를 나서야 했다.

사람이나 씨앗을 흩뿌린다는 이산(離散). 디아스포라(Diaspora)의 역사는 성서의 유대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최초의 디아스포라는 BC 586년 바빌로니아로 끌려간 포로들이다. 바빌론 유폐(幽閉)다. 

두 번째는 로마제국 때 지중해 연안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다. AD 1세기경에는 팔레스타인 바깥에 살던 유대인 수가 팔레스타인 유대인 수보다 훨씬 많았다. 2천 년 유랑이라는 긴 시간 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건국했고 세계 정치·경제를 움직이는 큰손이 되었다.

인류의 역사는 이산의 역사다. 20세기 초 오스만투르크의 대학살로 아르메니아인들은 프랑스와 미국으로 탈출했다. 17세기 종교탄압을 피해 유럽에서 아메리카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 19세기 대기근은 아일랜드 사람들을 대량 이주케 했다. 현재 본토보다도 미국에 아이리시가 더 많은 이유다. 또 1차 세계대전은 이탈리아·독일·폴란드 등 많은 유럽인을 미국으로 건너가게 하였다.

한국인에게도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가 있다. 구한말 삶에 지친 백성들은 곤궁함을 피하고자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를 개척했다. 후에 소련 스탈린은 한인들에게 일본 간첩죄를 물었다. 무려 18만여 명을 기차 화물칸에 실어 3천km 이상 떨어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또 일제강점기 수탈과 강압을 피해 중국 만주로 이주와 강제 이주가 있었다. 오늘날 50만 고려인과 200만 조선족, 우리 한민족 이산을 낳게 한 역사다. 광복 후 기억에서 지워졌던 공산권 동포들의 실상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북방외교 덕이다. 

중국· 러시아와의 수교로 2,000년대 들어 중국과 구소련동포들을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안산과 광주의 고려인마을·제천의 고려인마을 유치 등은 지방 인구소멸 대응과 지역 경기 활성화 대책으로까지 이어진다.

“처음에 남편하고 식당 열면서 그냥 독일 알파벳을 놓고 부르기 쉽게 조합한 게 아카키코(Akakiko)였습니다. 저는 사실 일본에 못가봤어요.” 오스트리아와 유럽에서 식당 23개를 운영하는 아카키코 그룹 회장 이야기다. 매년 한국과 전북을 찾아 한 달 이상을 머무르며 구상하고 공부한다. 70년대 파독 간호사다. 부안이 고향인 열렬 의지의 전북인이다.

이외에도 70년대 이후 한국을 떠나 외국에 정착한 분들이 많다. 미국 LA의 태권도 사범·몽골 선교사·남아공 기업인·태국 방송인·남미 에콰도르 의류인·필리핀 리조트 대표·중국 상해·광주·심양 기업인들이 취재 중 만난 사람들이다. 세계에서 활약하는 ‘디아스포라 전북인’들이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조국을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선배·선열들. 그들 대부분은 그리운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출국한 ‘이산 전북인’들은 그래도 일년에 한번은 우리나라와 고향을 찾아 가족, 친지들과 함께한다.

750만 해외동포시대. 70년대 한국 인구 추이를 살펴볼 때 10% 안팎이 전북인이다. 어림잡아 50∼70만 명의 전북인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걸로 추정된다. 전라북도는 ‘2024한상비지니스대회’ 유치를 신청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전북인 공식 네트위크가 없다.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로 채우기 위해서는 ‘세세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 전북인 이산(離散)지도, 2023디아스포라 맾(Diaspora map)이 다시 한번 절실한 이유다.

“프랑스에 한국을 소개하고 알리는데 전북의 인프라를 한번 써보려고 해도 없어요. 전부 다 민간 알음알음으로 두드리는 거지요.” 베르사이 권 회장이 파리 드골 공항에서 던진 말이다.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김정기 대표(前KBS전주 편성제작국장). KBS PD. 1994년 다큐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시작으로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다. 3.1절 기획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 ‘한지’ ‘백제의 노래’ 등 30여 편의 다큐멘터리와 ‘아침마당’ ‘6시내고향’ 등 TV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사)천년전주한지포럼 대표로 ‘한지알림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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