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 김규원
  • 승인 2023.11.0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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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운/수필가
김고운/수필가

나는 보청기를 쓰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TV 볼륨을 최고 수준까지 올려야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할 뿐이다. 그게 사람의 음성인지 다른 잡음인지조차 식별하지 못한다.

보청기 볼륨을 거의 최고 수준으로 맞추었는데도 대화 상대의 입 모양을 봐야 가까스로 알아들을 수 있다. 50대 후반께부터 청력이 나빠져 병원에 갔더니 퇴행성 난청이어서 치료해볼 게 없다며 보청기를 권했다.

그렇게 보청기에 의지하며 버틴 지 23~4, 점점 완전한 귀머거리에 들어서는 과정이다난청이 시작되면서 귓속을 차지한 건 이명耳鳴이다. 처음에는 기차선로 근처에서 지나가는 기차 소리를 듣는 것처럼 굉장한 이명이 들렸다. 어떤 날은 신문 인쇄하는 윤전기가 돌아가는 듯하고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쓰르라미 몇백 마리가 목청껏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이명에 신경을 쓰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걸 잊기 위해 헤드셋을 쓰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듣기도 했다. 이명은 내 건강 상태와 기분에 따라 세상의 온갖 시끄러운 소리를 다 끌어와서 날 괴롭혔다. 그러다가 점점 이명을 잊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들리는 소리가 일상적인 것이 되어 내 삶의 배경소리로 무덤덤하게 흘려보내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이명 때문에 아쉬운 일은 내 삶에서 숱하게 내게 들렸던 소리들을 제대로 불러낼 수 없는 것이다. 어릴 적에 잔병치레하느라 칭얼대던 날 달래주던 어머니의 음성이나 내가 좋아하던 자연의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지만, 난청과 이명이 오고부터는 그리운 소리를 소환할 수 없었다.

일본제국주의가 태평양 전쟁을 치르느라 모든 것을 훑어가던 시기에 태어난 나는 깻묵 밥으로 연명하던 어머니에게서 영양가 없는 물젖을 먹어야 했고 이듬해 해방되고 조금 살만해지던 때에는 동생이 태어나 젖배를 곯았다.

허약하게 태어나 젖배를 곯았던 나는 폐렴에 걸려 1년 반 동안 날마다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약골로 태어나 늘 어머니 손 그늘에서 살아야 했다.

안채에서 멀리 있던 화장실에 갈 때 어머니를 졸라 화장실 앞에 지켜달라고 생떼를 써서 앞에 계시게 하고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라서 들었다. 무섭다며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어머니를 가까이 오시게 했다.

똥이 구려서 오래는 살겠다시면서도 냄새나는 화장실 앞에서 삼국지와 장화홍련전, 서유기, 수호지와 옛 동화를 가만가만히 들려주셨다.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요즘의 웬만한 구연동화가 수준을 능가했다. 삼국지를 들려줄 때 전쟁 장면에서 장수들이 나와 호령하는 대목은 목소리까지 걸걸하게 변성하여 실감 나게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중에 그 이야기들을 책으로 읽으면서 어머니의 기억력과 구연 솜씨를 새삼 감탄해야 했다. 그 재미나던 어머니의 음성은 오래도록 내게 남아 날 자라게 하고 서러울 때, 즐거울 때도 얼핏얼핏 튀어나와 날 위로하고 충만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그 정겹던 음성이 난청과 이명에 멀리 가버렸다.

어릴 적에는 유난히 귀가 밝아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세상의 온갖 소리가 저마다 다른 무늬를 갖고 있다는 데에 흥미를 느꼈다. 비 오는 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물이 떨어지는 자리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걸 알아보기 위해 말려둔 바가지를 몽땅 꺼내와 줄줄이 비를 맞히며 ! ! !’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는 걸 재밌어하다가 혼찌검을 당하기도 했다.

빗소리가 달라지는 걸 구분해 듣느라 온몸이 다 젖도록 밖에서 놀다가 감기에 걸려 고생하기도 여러 번이다. 걸핏하면 감기에 걸렸지만, 비가 내리는 날에는 지우산紙雨傘을 펴들고 뜰이나 밭을 돌아다니며 비가 떨어지며 내는 소리를 구별해 듣는 걸 좋아했다. 종이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경쾌하고 리드미컬했다. 이 소리 저 소리를 찾아 구분하는 게 즐거웠다.

소리를 좋아했으니 음악에 소질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듣기 좋아하고 목청은 맑고 컸어도 음악엔 소질이 없었다. 노래를 부르면 음정은 얼추 맞추어도 박자가 엉망인 박치였다. 내가 듣던 자연의 소리처럼 제멋대로 박자를 흩트렸다. 나 혼자 멋에 겨워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수없이 반복해서 연습해도 자꾸만 박자를 놓쳤다. 뭐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누가 뭐래도 고집불통이던 삶처럼 제멋대로였다.

난청이 시나브로 심해졌다. 점점 청력이 떨어져 소리를 잃는 게 안타까워서 음향 증폭 컨트롤러를 사서 소리를 키워 듣는다. 음향 분리가 잘되고 크게 들리는 기기를 통해 비로소 소리다운 소리를 듣는다. 이러다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날이 올 거라는 안타까운 조바심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여러 음악을 듣는다.

소리에서 멀어진 탓인지 클래식 음악은 듣기 어렵다. 이리저리 소리를 찾다가 요즘은 소녀 가수 전유진의 고운 노래를 들으며 행복하다. 새벽 산골 옹달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듯 맑고 고운 음색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증폭기를 통해서나마 내가 들을 수 있는 최상의 소리, 이 소리도 머지않아 들을 수 없을 터이지만, 들을 수 있다는 걸 고마워한다.

내가 들을 수 없어서 흘려보낸 소리들은 지금 어느 공간에서 공명을 찾고 있을까? 내게 남은 시간과 내가 들을 수 있는 시간이 같은 길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오늘도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보니 지나간 모든 게 다 꿈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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