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게, 한글날이었네
긍게, 한글날이었네
  • 신영배
  • 승인 2023.10.18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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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김정기 대표
김정기 대표(이야기 곳간/Story House)

긍께야. 차 한잔 할까?” 직장 초년 시절 선배가 어깨를 툭 치며 건든다. 고개를 돌려 긍께. 아니고 긍·· 라구요. 긍게.” 선배는 다시 긍께 맞잖아.”하고 되받는다. “아니당게. 긍께가 아니라. 긍게. 전라남도, 광주 사람들은 긍게에서 뒤에 악센트가 붙어서 된 발음으로 긍께이지만 전라북도 사람들은 긍게하고 앞뒤가 같아요. ‘긍게해봐요. 긍게

서울 시절, 지인들에게 같은 전라도지만 전북과 전남이 이렇게 말의 억양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주었다. 109. 한글날 아침. 오래된 기억이 스쳤다. 한글. 나무위키는 현대 한국어 또는 한국어족 언어의 표기에 쓰이는 문자로 남한과 북한, 연변 일대에서 공용문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또 백과사전은 조선 4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창제하여 반포한 우리나라 문자로 설명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글은 자음과 모음 합쳐 28. 하지만 지금은 24자 만이 실생활에서 쓰이고 있다. “한글의 최대 장점은 말하는 그대로 표기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소리글자.”라고 언어학자들은 칭송한다.

자기네 언어를 표기할 글자가 없던 인도네시아 부톤섬의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공식 문자로 채택해 화제가 되었다. 아이들 교과서뿐 아니라 거리 표지판까지 한글로 표기했다. 한국어는 아니지만 한글로 자기네 말을 표기한 것이다. 이뿐인가? 흔히들 “680여 년 전 세종대왕이 IT·디지털 시대 후손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들 말한다.

손안에 메신저 휴대전화. 한글 자판으로 소리 나는 대로 문자를 써 보내도 상대가 다 이해한다. 하지만 이웃 중국어나 일본어는 두 번 세 번의 변환 과정을 거쳐 보내야 하니 스피드 시대에 도저히 한글을 따라올 수 없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천지인문자 찍기는 이마저도 한 손에 한 면에모두 소화해 낸다. 간편한 한글 사용에 누구나 감탄한다.

몇 년 전. 스페인 바스크 지방 빌바오를 방문했다. 대서양으로 향하는 강가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을 건축해 명성을 얻고 있다. 바스크 지역은 1930년대 이후 스페인으로부터 분리주의 운동으로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온 지역이다. 자기네 말 바스크어를 쓰는 사람들은 스페인과 다르기에 투쟁했다.

하지만 독재자 프랑코의 무력으로 오랜 시위 끝에, 늦게나마 1979년에 자치 법령으로 인정받았다. “어 저 표지판 봐. 그러네. 왼쪽이 바스크어 같지. 오른쪽은 스페인어 고.”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택시를 기다리다 마주한 거리 표지판은 모두 다 네모난 규격에 바스크어와 스페인어가 똑같이 표시되어 있다.

여기만 긍게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 뒤 방문한 같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에서도 같은 표기 방식으로 카탈루냐어 먼저 스페인어 다음이다. 심지어 카탈루냐 도서관에는 카탈루냐어로 표기된 책·잡지·지도·악보 등 300만 점 이상이 보관되어 있다.

1992년 여름에 개최된 바르셀로나올림픽 개회식에서도 스페인어가 아닌 카탈루냐어 알파벳 순으로 선수단이 입장해 세계인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난 2019. 전라북도는 전라북도 방언사전을 발간했다. 발간사 일부를 보면 방언은 표준어를 기준으로 틀린 말이 아니라, 다른 말입니다. (중략). 차별이 아닌 차이로 바라봐야 합니다.” “말씨의 매력을 특징짓는 방언은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은 물론 삶의 전반적인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 우리가 평소 말하고 있는 전라도 사투리전라어에는 전북인의 정신과 문화가 살아있다. 일찍이 고창 출신 동리(桐里) 신재효는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등 판소리 다섯 바탕을 당시 고창말로 정리했다. 오늘날까지도 판소리를 하려면 전라도 사투리를 해야 하는 이유다. 또 남원 출신 최명희는 대하소설 혼불을 통해 전라도 사투리의 정수를 보여줬다.

이제는 모든 대화에 통용되는 표준말 대명사 거시기’. ‘진짜로·상당히·엄청나게뜻을 품은 부사 솔찬히’. ‘발가벗었다·홀딱 벗었다·누드같이 낯 붉히는 말이 아닌 깨 벗었다는 추함이 전혀 없다. 사랑과 정()이 듬뿍 묻어난다. 그리고 감탄사로, 접속사로, 의문사로 그때그때 역할을 마지않는 긍게까지.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우리 말이다.

전라북도 방언사전 발간에서 멈춘 전라어 보존 사업. ‘긍게박물관’ ‘거시기시장’ ‘솔찬히미술관’ ‘깨벗은목욕탕까지 생활 속에 이름을 불러보자. 재단이나 연구소 설립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사전 발간에 그쳐 못내 아쉽다. 생활 속 당당한 전라도 사투리야말로 전북인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는 지름길이다. 우연히 만난 방송사 후배가 묻는다. “선배님 요즘 지내시는 게 어때요?” “긍게. . 퇴직하고 홀로 산다는 게 솔찬히 힘드네. 길거리에 나만 깨벗은 느낌이랄까. 그네.” “긍게요.”

 

김정기 대표(KBS전주 편성제작국장). KBS PD로 입사. 1994동학농민혁명 100주년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3.1절 기획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 ’한지‘ ’백제의 노래30여 편의 다큐멘터리와 아침마당‘ ’6시 내고향TV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 지금은 ()천년전주한지포럼에서 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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