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옷을 입히자
이제는 옷을 입히자
  • 전주일보
  • 승인 2023.10.05 11: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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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김정기 대표(이야기 곳간/Stor House) 

추석 연휴 뒤끝. 사람들 옷차림도 반소매 옷에서 가을옷으로 갈아입었다. 서울에서 온 지인들과 전주한옥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오목대’를 찾았다. 오목대에는 아주 ‘뜨거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바로 1900년(고종 37년)에 고종이 친필로 쓴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비(碑)’다. ‘1380년(고려 우왕 6년) 삼도순찰사 이성계가 남원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하는 도중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베푼 곳’이라는 뜻이다. 

“개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주이씨 종친들을 모시고 고려(高麗)가 썩을 대로 썩었으니 자기가 갈아엎겠다고 한 자리가 바로 여기예요. 그 비(碑) 입니다. 은연중 역성혁명·쿠데타를 하겠다는 마음을 내비친 자리지요.” PD의 설명에 사람들이 아∼ 탄식과 함께 웃는다. 일행 중 한 명이 “근데 고려왕조는 이성계의 역심을 사전에 몰랐을까요?” 되묻는다. “모르지요∼. 저기 또 구름다리 건너가 이목대입니다. 태조 이성계의 4대조 할아버지 ‘목조 이안사’가 살았던 곳이라 하는데요.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 두 사람. ‘창암 이삼만 선생과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바위가 또 숨겨져 있지요.” 다들 빨리 ‘이목대’로 가자고 재촉한다.

지난달 20일. 전주 덕진공원 현장 브리핑. 우범기 전주시장은 “전주한옥마을에 집중된 관광객을 덕진공원 등 북부권 전역으로 확산시켜 전주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1박 이상 머물며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체류형 관광도시’로 만들겠다.”라고 설명했다. 오는 2028년까지 550억 원을 투입해 호수 수질을 개선하고 열린 광장 조성, 야간경관 조성 등 총 22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근데 덕진공원은 전임 시장 때도 ‘정비’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파헤쳐졌다. 현수교도 없애고, 다리 중간에 도서관도 만들었다. 연꽃 일부만 남기고 경관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고친 지 오래된 것도 아닌데 살릴 건 살리고 공사하길 바랍니다. ∼지금 도서관은 이용하는 사람이 있긴 한가요??” “연화정으로 가는 중국식 반원형 석조다리와 격자형 석조 인도교(상해의 예원 짝퉁)철거 하고 우리 것으로” “덕진공원이고 아중호수도 다들 개발 붐이네요. 건설업계들 해피하시겠네요. 시장 잘∼” 전주덕진공원 개발계획에 올라온 시민들 댓글 일부다. 

“얼씨구 절씨구 좋을 씨고∼ 돈 봐라 돈 좋다. 돈 돈 돈 돈 봐라. 살었네 살었네 박홍보가 살었네∼.” 모짜르트 생가 주변에 모인 관광객들이 우리 명창(名唱)의 판소리 흥보가 ‘돈타령’에 ‘덩실덩실’ 춤이다. 지난 7월. 유럽 오스트리아 찰츠부르크 모짜르트 생가 앞에서 문화단체 ‘천년전주한지포럼’이 마련한 즉석 공연이었다. 

1층에서 어두운 계단을 따라 올랐다. 캄캄한 방에 생전의 악보와 펜 그리고 생활 도구와 사진들이 정리되어 있다. 오래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란 영화로 소개되었던 모짜르트다. ‘소금 도시’라는 잘츠부르크. 근데 전주보다 훨씬 작다. 인구 15만여 명의 잘츠부르크에는 주민보다 관광객들 천지다. 시내 호텔에는 아예 방이 없다. 다른 도시로 가야 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의 무대 ‘미라벨궁’. 관광객들 입에서 ‘에델바이스와 도래미송’이 흥겹게 흘러나온다. 

벽에 붙은 포스터 사진 앞에서 영화 속 ‘대령 가족’과 사진찍기 바쁘다. ‘영화 한 편’ 이야기가 수많은 사람을 불러 모았다. 먼 옛날 ‘로마시대 소금광산 이야기부터 모짜르트·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까지 거리마다 ‘이야기’가 넘쳐난다. 2023년. 올해도 벌써 2,93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해마다 7, 8월에 열리는 세계적인 음악축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시내 극장에서 분산 개최하는 축제에 무려 225,000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그저 부럽다. 

이미 전주에도 얼마 전 막 내린 ‘전주세계소리축제’·‘세계서예비엔날레’·‘전주국제영화제’ 그리고 곧 시작될 ‘발효식품엑스포’. 모두 다 전라북도나 전주시가 주관하는 굵직한 축제다. “근디 그런 갑다 혀요. 가믄 왠지 흥이 없당게요. 전주 사람들이 주인이 아닌 거 같던디. 다 객지 사람들이어요.” 축제장에서 쉽게 듣는 소리다. 이번 10월 한 달 동안 전주시는 비빕밥축제·한지축제·발효식품엑스포까지 크고 작은 13개 행사와 축제를 ‘전주페스타2023’으로 엮었다. 개막식도 따로 한다. 선택과 집중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는 계획이다. 과연 그럴까? 의문이다.

‘문화는 다양성’이다. 모름지기 다양성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숨은 이야기가 부유(浮游)해야 한다. 살아 있어야 한다. 전주는 콘텐츠의 도시다. 전주 덕진공원 하면 ‘연꽃’이. 경기전 하면 ‘하마비(下馬碑)’가. 기린봉에는 영물(靈物) 우백호(右白虎) ‘기린’이. 이제는 이야기 옷을 입어야 한다. 전주가 옷을 입어야 한다.


김정기 대표(前 KBS 전주 편성제작국장).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지역문화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3.1절 기획 ‘무주촌 사람들’ ‘키르기즈 아리랑’. ‘한지’ ‘백제의 노래’ 30여 편의 다큐와 ‘아침마당’ ‘6시 내고향’ 등 TV교양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 지금은 (사)천년전주한지포럼 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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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운 2023-10-05 17:30:04
좋은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