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부, 답답한 국민
이상한 정부, 답답한 국민
  • 김규원
  • 승인 2023.09.1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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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원/편집고문
김규원/편집고문

9월도 절반을 넘어 이제 올해도 100일 남짓 남았다. 지긋지긋하던 더위도 한풀 꺾여 지낼만하고 추석이 낼모레여서 꾸러미를 든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띄기도 한다. 한 해 농사가 마무리를 향해 가는 이즈음은 밭 한 두락 없는 사람도 그저 흐뭇해지는 때다.

내 집에 곳간 하나 없어도 남의 집에 곡식이 들어차면 덩달아 든든해지는 좋은 계절이다. 들판에 벼 이삭이 누르스름하게 익어 고개를 숙이는 이 좋은 계절인데 도무지 흐뭇하기는커녕 불안하기만 하고 금세 무엇이라도 터질 듯 조마조마하다.

지난해 5월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점점 달라지고 있다. 좋은 쪽으로 달라지는 게 아니라 아주 나쁜 쪽으로 달라지고 있다. 뭐든 편안하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은, 그래서 조바심을 내며 매사를 서둘러야 하고 지금 당장 어찌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날마다 뭔가 터지고 좋지 않은 일들이 거듭되면서 우리가 사는 주변 환경이 달라지는 느낌 때문이다. 정치가 국민을 보호하고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도록 든든하게 받쳐주는 게 아니라 자꾸만 나락으로 몰아가는 느낌, 생존 조건이 갈수록 나빠지는 느낌 때문이다.

그런 변화의 조짐이 이 나라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의 말에서 비롯되어 증폭되고 변질하여 더욱 조이는 이상한 느낌이 반복되고 있다. 나라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여러 부문에서 예산이 삭감되고 젊은 동량들이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특히 과학기술 발전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초석인데 정부가 국가 R&D(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했다고 한다. 세계가 한국의 기술 발전에 경탄하면서 지극히 경계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근본인 연구 예산을 삭감한 일은 아예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처사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재산이고 수단인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했다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 기술 국가들이 특히 한국에는 기술을 철저히 감추고 있는 가운데서도 우리 연구자들은 그들보다 더 우수한 기술을 개발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11일 과학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는 NST 산하 25개 출연연에 2024년 연구개발(R&D) 주요 사업비 삭감 규모를 통보했다. 과기정통부가 기존 예산안을 재검토하며 출연연에 R&D 예산을 20% 삭감한 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23%,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과 한국화학연구원은 약 28% 삭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누리호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도 약 23%의 삭감안을 통보받았다. 삭감을 통보받은 연구기관들은 패닉 상태다.

카이스트(KAIST) 4대 과학기술원도 약 10~15%대의 삭감안을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초과학 연구를 주도하는 기초과학연구원(IBS)도 약 15%의 삭감안을 전달받았다. 이에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출연금 규모는 확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 R&D 조정안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를 아직 거치지 않았고 국회 정부예산안 심의를 거쳐야 최종 확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정부가 산정한 이번 예산 삭감 규모가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조치는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연구개발(R&D)는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해서라고 한다. 당시 윤 대통령은 R&D 국제협력은 세계적 수준의 공동 연구를 대폭 확대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출연 연구원의 한 과학자는 이를 두고 실체없는 과학계 카르텔 발언때문에 연구개발 예산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30%를 줄이라는 것은 결국 경쟁력 있는 새로운 연구를 못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라고 걱정했다고 한다.

이에 연총은 충분한 방향성과 전략적 검토 없이 졸속으로 이뤄지는 국가 R&D 예산의 전면적 재검토와 삭감은 연구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연구환경을 악화시키고 있으므로, 일방적인 예산 전면 재검토 및 삭감 시도를 철회하라고 밝혔다. 이상은 헤럴드경제의 보도다.

국내 연구원들의 연구비를 20~30% 삭감하고 국제 연구 협력 예산은 25% 증액했다. 우리만의 기술로 세계의 기술을 따돌려 격차를 이루어야 우리가 앞서나갈 수 있을 건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연구진의 연구비를 깎고 공동 연구 예산을 늘리다니 이게 도대체 뭔가?

여태 어떤 정부도 과학기술 연구 예산을 줄인 일은 없었다. 그런데 검찰수사만 아는 대통령이 과학기술 연구 분야까지 간섭하게 했을까? 과학 연구계가 발칵 뒤집어진 이번 예산삭감 문제는 어떤 잘못보다 심각하다.

누군가 우리의 기술 발전을 방해할 목적으로 거짓 정보를 주었거나 대통령을 설득했다는 의심이 든다. 우리 기업들의 연구도 그 근본은 과학기술 연구기관에서 양성한 연구원들이다. 그들의 연구를 막는 일은 나라 발전을 막는 일과 같다.

이제 정부의 이 같은 문제를 바로잡을 곳은 국회뿐이다. 국회가 예산 심의에서 이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하고 원상 복귀하게 하는 마지막 절차가 남아있다. 자원이 없는 우리가 사는 길은 과학기술을 비롯한 기술과 K-문화다.

어떤 의도에서 이런 삭감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역할이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하며 예산을 심의하는 일이므로 그 본분에 충실한다면 반드시 제대로 살려놓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도 정부가 고분고분하지 않겠지만.

내년 총선을 의식하여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느라 정박 중요한 과학기술 예산을 정부안대로 통과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길은 오직 기술, 과학기술 발전에 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21대 국회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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