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유감(有感)
벌초 유감(有感)
  • 김규원
  • 승인 2023.09.14 13: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규풍/수필가
최규풍/수필가

부모님 산소에 벌초하러 갔다. 긴 장마와 폭염에 살찌고 내 키를 넘은 바랭이와 망초들이 기세등등하게 늘어서 있다. 다른 잡초들도 세력이 등등하기는 마찬가지다.

칡넝쿨은 여전히 악명을 내려놓지 않고 암세포처럼 산소 주변을 누비며 발을 뻗었다. 심지어 무등을 타고 올라가서 소나무의 목을 조이고 있다. 벌초를 안 하고 한눈팔면 금세 쑥대밭이 된다.

예초기 대신에 예리하게 갈아 온 낫을 꺼냈다. 산소 진입로의 입구부터 길을 터야 했다. 폭우로 밭에서 무너져내린 흙더미에 통로가 막혔다. 드나들기 힘들 지경으로 무성한 잡초들과 칡넝쿨이 얽히고설켰다. 낫으로 베면 아들과 아내가 뒤에서 치웠다. 십여 분간 낫을 휘두르다 보니 팔의 힘이 빠지고 등에 진땀이 났다.

뒤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아내가 참 고맙다. 나에게는 혈육 지친인 부모지만 아내로서는 혼인이라는 계약의 의무감이 앞선 남이 아닌가. 아내가 간혹 부모님 산소를 없애자고 했는데 오늘도 한마디 추가했다. 유골을 화장해 봉안당에 모시자고 하였다.

자식과 며느리인 우리가 죽으면 아들과 손자가 힘들게 이 일을 해야 할 것이니 얼마나 힘이 들겠냐는 것이다. 더구나 손자는 몸이 허약하니 이렇게 힘든 벌초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을 앞세웠다.

부모님 산소는 벌 안이 상당히 넓다. 사면으로 사각 석을 둘려 봉분을 조성하고 상석과 비와 망주석을 세웠다. 백 년 또는 이 백 년 산소가 잘 보존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작년 봄에 사달이 났다. 사각 석 좌측 석판이 벌어졌다. 고정한 앞쪽의 조임 나사가 풀어져서 벌어진 것이다.

지난가을에 깊이 박힌 제비꽃 뿌리를 파내었는데 빗물이 그대로 스며들어서 혹한의 겨울에 흙이 얼어붙자 부풀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나사가 떨어진 것이다. 석판이 떨어지지 않게 바깥쪽에 철주를 단단히 박아 임시방편 했다. 제대로 수리하려면 허물고 다시 조립해야 한다.

공사가 커지는 일이다. 그러한 일을 다시 벌이느니 시누이의 제안대로 유골을 화장하여 봉안당에 모시자 아내가 제안했다. 아내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멀쩡한 무덤을 헐어 부모님의 유골을 꺼내고 태우자는 것은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

아내는 3년 전의 벌초 사건을 들먹인다. 3년 전에 운동복 바지를 입고 벌초하다가 예초기에 놀란 말벌이 내 허벅지를 쏘아 갑자기 하늘이 노랗고 정신이 몽롱해져서 쓰러졌다. 놀란 아들이 나를 등에 업고 차에 태워 십 리를 달려 시골 의원 응급실을 두드렸다.

원장이 혈압을 재고 수치가 45라며 주사기를 꽂았다. 식은땀이 흘러 옷이 젖은 탓에 이가 부딪치고 등이 시리더니 한참 후에 혈압이 오르고 정신이 들었다. 말벌에 쏘이면 간혹 독으로 인한 알레르기 반응이나 호흡 곤란이 오거나, 심하면 쇼크로 사망하기도 한단다.

나 혼자 벌초를 했으면 큰일을 당할 뻔했다. 아내가 그 일이 자꾸 떠올라서 산소를 없애자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 아들과 손자가 벌초하다가 혹시라도 말벌에 쏘여 사경을 헤매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아내가 엉뚱하거나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벌초할 때 벌이 두려워 부모님의 산소를 허물고 뼈를 화장하여 유해를 봉안당으로 모시는 것은 내가 눈뜨고 살아있는 한 어림없는 일이다. 지금은 매장은 드물고 화장 문화가 대세다. 나도 죽으면 반대할 생각이 없다. 자식이 알아서 할 것이다. 내 유해를 선산의 나무 밑에 묻으면 그만이고 바람에 뿌려도 상관없다.

조상님들은 명당을 찾아 깊은 골, 높은 산도 마다하지 않고 부모의 묘를 쓰고, 3년간 시묘하고, 해마다 명절을 당하여 미리 벌초하고 성묘했다. 요즘은 첩첩산중 가파른 산등성이를 피하여 가까운 찻길 옆에 모시니 벌초하기도 편하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수시로 성묘하고 살필 수 있다. 벌초와 성묘가 힘든 게 없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니 승용차로 묘 앞까지 가서 살피고 돌아온다. 그마저도 힘들면 전화 한 통에 벌초 대행도 얼마나 편한가. 아무도 나무라거나 손가락질하지 않는 세상이다.

아직 추석이 며칠 남았지만, 벌초를 서둘렀다. 나는 칠십 대 중반인데 아직은 내 손으로 부모님 산소 벌초를 한다. 늙어서 몸이 힘들어도 마음은 즐겁다. 단정해진 산소를 바라보면 마음이 놓인다. 부모님께서 환한 미소로 어깨를 다독여 주는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