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을 바라보며
연꽃을 바라보며
  • 김규원
  • 승인 2023.07.2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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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풍/수필가
최규풍/수필가

  덕진공원의 얼굴은 연못이고 주인공은 단연코 연꽃이다. 해마다 거르지 않고 6월부터 덕진공원을 살핀다. 연꽃이 언제 피는지 궁금하여 시간을 가늠한다.

   나는 연꽃을 그 어떤 꽃보다도 사랑한다. 이른 봄 매화와 개나리를 필두로 4월이면 벚꽃과 진달래가 산천을 물들인다. 5월이면 향기롭고 화려한 장미의 세상이다. 수많은 꽃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잔치를 벌일 때 연은 조용히 너른 잎을 받들고 조심스럽게 발돋움을 하며 목을 올린다. 꽃들이 시샘을 멈추고 시들어 사라진 후에 늦은 소식을 알린다. 6월 중순이면 연못에 아름다운 부용(芙蓉)이 고개를 든다. 칠월이면 연못이 온통 품이 너른 연잎으로 우산을 펴고 붉은 연꽃이 수줍은 얼굴을 선보인다. 전혀 교만하지 않고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해마다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이웃을 헐뜯고 내치지 않는다. 사이좋게 세상을 나누며 소통하고 공생한다. 덕진 연못은 가히 연화세계요 극락정토이고 연화국이 아니겠는가. 연화대는 극락세계에 있다고 하는 아래쪽을 바라보는 높은 곳이다.

 

  ‘연잎에 비 내리니라는 서대원 작사 김희조 작곡의 성가(聖歌)가 있다. 연잎에- 비 내리니 구슬만 궁글더라. 그다지 내린 비가 흔적이 어디런고. 이 맘도 저러하거늘 연화대인가 하노라.

 

  연잎은 장대비를 맞아도 젖지 않고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연잎은 빗물을 받아도 굴리고 있다가 무거우면 미련 없이 살며시 내려놓는다. 옆의 빗물을 탐내지도 않고 빼앗지도 않는다. 나 혼자 소유할 생각도 없고 욕심도 없다.

  연꽃은 어떠한가? 진흙에 뿌리를 박고 썩은 물을 마시고도 찡그리지 않고,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해맑은 얼굴로 핀다. 화사한 봄날을 다른 꽃들에 양보하고 무덥고 습한 여름에 장마를 무릅쓰고 꽃을 피운다. 연꽃이라고 어찌 호시절을 마다하겠는가? 양보의 미덕을 지닌 것이다.

 

  진흙 속의 연꽃, 다른 꽃들이 싫어하건만 연은 진흙을 달갑게 받아들이고 고통을 참아 낸 것이다. 인생은 고해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번뇌 망상을 다 감내하고 부지런히 인격을 닦으면 연꽃처럼 아름다운 인생일 것이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없는 형편에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하여 자수성가한 이를 대하면 연꽃의 향기가 난다.

 

  맑은 물에서는 연꽃이 향기가 없다. 깨끗한 정토에서는 연이 뿌리를 뻗지 못한다. 진토(塵土)에서 연은 꽃을 피운다. 세상을 가리켜 진세(塵世)라고 한다. 티끌 세상에 살면서 연꽃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빛깔과 그윽하게 향기 나는 사람이 그립다.

 

  연잎은 물을 받아 안아 주어도 금세 보내준다. 살다 보면 여러 인연을 만난다. 부모와 자식으로, 부부로, 친구로, 어쩌다 스치는 바람으로, 아니면 걷다가 넘어지는 돌부리로, 꿈에도 마주하기 싫은 악연으로, 여러 모습으로 마주 다가온다. 연잎이 받은 빗물을 비우듯이 아무 미련 없이, 아무런 애착 없이 때가 되면 흘려보내야 한다. 선연이나 악연이나 영원한 인연은 없다. 연잎에 고인 물방울처럼 영원히 끌어안을 인연은 없다. 하지만 연잎처럼 둥글게 안아 주고 보내야 한다. 원망도 척도 짓지 말고 애착도 탐착도 비워야 한다. 내게 다가온 인연을 위하여 부처님에게 불공하듯이 사랑하고 공경해야 한다. 연잎은 무게 중심을 잘 잡는다. 조화로운 균형 감각을 간직한다. 그러다가 힘에 버겁고 균형을 잃으면 주저하지 않고 마음을 비운다.

 

  예전에는 덕진 연못에 현수교가 있고 다리는 출렁거렸다. 밤이면 현수교 조명 불빛이 휘황찬란했다. 교행할 때 마주 오는 이와 조심해서 눈인사하였다. 현수교 동쪽은 연꽃이 만발했고 수가 적으니 귀하게 보았다.

  덕진 연못은 새 모습으로 단장했다. 배는 사라진 지 오래고 연과 창포가 연못을 온통 점령하였다. 예쁜 현수교를 철거하고 딱딱한 돌다리를 놓았다. 그리고 조망대가 있던 곳에 도서관을 세웠다. 연못에서 책을 읽으라는 주문이다. 연꽃을 볼까 책을 볼까, 아무래도 책보다는 연꽃이 먼저다. 연꽃을 감상하고 연꽃이 암시하는 삶의 의미를 깨친 후에 연화정 도서관에서 불경을 읽고 싶다. 불경이 있을 리 만무하고 인생 철학서 한 권쯤 나를 기다릴지 모른다.

  전주시는 취향정 외에 새로 세 군데에 정자를 지었다. 사모정, 육모정, 팔모정의 연정이다. 편하게 연정에 앉아서 연꽃을 바라보며 세파에 물들고 번뇌에 찌든 나의 삶을 정화하면 좋겠다. 장대 같은 빗줄기에도 찢기지 않고 의연한 연잎과 썩은 진흙탕에서도 향기를 품는 연꽃을 바라보며 혼탁한 마음을 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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