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망 속 물고기의 애원(哀願)
어망 속 물고기의 애원(哀願)
  • 김규원
  • 승인 2023.07.0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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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종/수필가
백금종/수필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참빗처럼 꼿꼿했던 등지느러미도 활기를 잃었다. 부릅뜬 눈이 불안 속에 두리번거린다. 쉼 없이 여닫는 입술은 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분주하다. 유유자적 물살을 헤치던 여유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한번 실수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안식처로 언제 돌아갈까 꿈까지 버린 것은 아니리라.

꿈인 듯 생시인 듯 혼몽한 순간일 것이다. 둥지에 남겨둔 피붙이들은 별일이 없는지? 헤엄 익히려 나 간 새끼들은 무사히 찾아 들었는지? 개구쟁이 막내 녀석이 보채지는 않는지? 만감이 순간순간 교차하며 가슴을 후벼 내리라.

화려한 것에 현혹되지 말라.’는 가훈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는데 한순간의 실수로 영어囹圄의 신세가 된듯싶다. 같은 물속인데도 수압이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리라. 이리 휘저어 보아도 동여맨 어망이요 저리 튀어 보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리라.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 다가온다는 것을 예견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붕어는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았다. 잉어처럼 듬직한 몸매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피라미처럼 날렵하지 않다. 메기나 가물치처럼 가녀린 어종을 마구 포식하지도 않는다. 천적을 한방에 몰아낼 독이나 무기를 가진 것도 아니다. 변색이나 위장술로 타 어종을 홀리고 우롱하지도 않는다. 맑은 물이면 제 세상을 만난 듯 새끼들을 낳고 기르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평범한 존재이다. 마치 소소한 일상에 만족하며 착하고 건실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처럼. 조금 소박하다고나 할까? 밋밋하다고나 할까? 인생살이 강을 건너오며 무색무취했던 나와도 다름없다.

우리에게도 답답하고 절박한 시절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의 회오리 속에서 갇혀 지낸 처지는 영락없이 어망에 갇힌 한 마리의 붕어였다. 거리에 나서기가 버겁고 사람 만나기가 두려웠다. 연일 떨어지는 봉오리들을 보며 잘못하면 나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다만 곧 풀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붕어만큼 절망하지는 않았다.

공산군에 잡혀갔던 아버지도 한때 어망 속의 붕어와 같은 순간을 맞이했다. 분간하기 힘든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혹독한 고문에 의해 피범벅이 되었다. 어깨에 칼이 꽂힌 채 지옥 같은 세상을 몇 날 며칠을 경험해야 했다. 자기들의 사상에 동조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물론 가족까지 몰살하겠다는 협박에 굴하지 않고 버틴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생사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떨어야 했던 아버지는 어망의 붕어보다 더 비참한 상태였다.

낚시는 기다림의 미학이라 한다. 강심에 드리워진 초릿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잡념은 사라지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 내 삶의 무게와 깊이를 헤아려 볼 수 있는 여가 활동이다. 주변에 펼쳐지는 수채화 같은 경관을 감상할 수 있고 아울러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해주어서 좋다고 한다. 요즈음 같이 각박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낚시에 열광하는 이유이다. 이처럼 좋은 의미가 있는데도 어망 속에서 겁에 질려 헐떡거리는 붕어를 보니 왠지 애잔한 마음이다.

찌를 응시하고 있는 낚시꾼은 희희낙락 만면에 웃음이다. 어망에서 떨고 있는 붕어는 안중에도 없고 오늘 하루 운수가 대통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듯하다. 몇 알의 미끼로 고귀한 생명인 붕어를 유혹하여 잡겠다는 것은 거미줄을 치고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거미의 탐욕과 뭐가 다를까?. 어쩌면 얄팍한 수단으로 일확천금하겠다는 요즘 세태와도 다르지 않으리라.

저 물고기 파는 거요?”

아니올시다

얼큰한 매운탕으로 저녁 밥상을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가 생각났다. 노인 산티아고는 수많은 시간과 힘겨운 고난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건져 올렸지만, 물고기에 대한 연민과 미안해하는 마음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산티아고는 단순히 낚시의 경험을 넘어서 생명의 존엄과 영혼의 존재를 생각해 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가 상어 떼의 공격으로부터 물고기 지키기에만 전념했다면 독자의 심금을 울리지 못했으리라. 전쟁터 같은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우리에게 그래도 희망은 존재한다는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이다. 신념과 의지를 가진 인간의 강인함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었기에 모두가 열광하는 것이 아닌가?

이기지 못했다고 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상어와 사투하는 와중에 읊조린 한마디는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게 하는 명언이 되어 아직도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중국의 강태공 또한 바늘 없는 낚시로 세월만 낚았다고 하지 않는가?

다시 호숫가를 걸었다. 작은 파도가 살랑살랑 밀려왔다. 푸른 수초들이 물결에 한들한들 춤추둣 했다. 그 사이로 작은 송사리들이 한가롭게 유영했다. 호수 위 창공으로는 한 무리 철새가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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