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100년, 3.1정신의 회복을….
새로운 100년, 3.1정신의 회복을….
  • 전주일보
  • 승인 2020.03.0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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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칼럼
이 현 재/논설위원
이 현 재/논설위원

 1919년의 거울에 2020년 한국사회를 비춰본다. 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은 새삼스런 수식이 필요 없다. 5,000년 한민족의 저력이며 민족사적 기념비다. 피로 쓴 그 혈사(血史)로 인해 우리 민족은 자연에는 진화가 있으나 인류에게는 발전이 있다는 역사의 법칙을 주체적으로 입증하고 삶의 양식에 일대 전환을 이뤄냈다.

일제 강점의 암흑기를 끝장낸 자주독립은 물론이고 왕권에서 민권으로 전이되는 정신사적 토대가 모두 3·1운동으로부터 배양됐다. 그 과정에서 학생, 지식인, 노동자, 농민 등 민중사회로부터 수많은 인재들이 등장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그 축적된 저력으로 한국사회는 지난 100년 글로벌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민주화를 꽃피웠다.

하지만 격동의 100년을 보내고 새로운 100년의 첫해를 맞는 오늘, 한국사회가 3·1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빈부 격차는 세계 최고의 양극화 사회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남과 북, 동과 서, 남과 여, 청년과 노년 간 대립과 분열이 더해져 초갈등사회로 빠져들고 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정치판의 모습이다. 무능과 부패가 판을 치는 가운데 정쟁으로 지새우며 피땀으로 일군 국력을 좀먹고 있다. 창궐하는 코로나 19’에 국민들의 생명과 일상이 일대 위기에 직면해 있는데도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는 그 모습에서 국가를 망국으로 몰아넣고 일신의 영달을 꾀했던 구한말 지도층을 보게 된다.

◇망국기부의 이지러진 군상들

2020년의 이지러진 대한민국 자화상은 3·1의 정신을 반추하며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상념에 젖게 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규정한 랑케의 경구를 따라가 본다.

나는 망국기부(亡國己富)의 이지러진 군상들을 차마 탓하지는 못한다. 일제 침탈 시기, 항일독립운동은 폐가와 죽음을 의미했다. 우리는 충의를 입에 달고 살지만 부귀와 죽음의 기로에서 일신을 바로 세울 이들이 그 얼마나 될 것인가. 다만 감당하기 어려운 고초와 두려움을 초인적인 의지와 신념으로 극복하고 민족사를 밝힌 선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과 몸을 가다듬을 뿐이다.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4학년 재학 중에 3.1운동에 참여해 투옥돼 똥통이 끓은 옥중에서 벼룩에 살이 짓물러 날밤을 새우면서도 샛별과 같은 민족정기를 잃지 않았던 <상록수>의 작가 심훈의 서대문형무소 옥중편지는 100년이 지난 오늘에도 민족의 앞길을 밝히는 등대다.

어머님!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려 쪼이고, 주홍빛의 벽돌담은 회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서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가며 살을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세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을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그려!’(1919829)

18세 가녀린 소녀의 몸으로 옥중 순국한 이화학당 1학년생 유관순 열사의 목소리도 1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귓전에 생생하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나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어디 이들뿐이던가? 탄압과 매수, 회유 공작에도 꺾이지 않았던 무명의 선열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3.1운동 당시 일제의 총칼에 희생된 피살자를 7,509, 부상자가 15,961, 투옥자가 46,948명으로 집계한다.

◇3.1정신으로 공화의 주춧돌을

상념은 전북사회로 이어진다. 임진왜란 이래 전북은 의병활동의 중심지였다. 구한말 의병활동 역시 마찬가지다. 동학혁명의 좌절로 을미창의에서 잠시 주춤했지만 이어진 을사·병오·정미 창의에 이르면서 전북은 의병활동의 본거지가 됐다.

그리고 101년 전 오늘. 3.4옥구, 3.5군산, 3.6김제만세운동으로 촉발된 전북의 독립만세 함성은 이내 전북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전북의 3.1운동으로 108명이 순국하고 460명이 실종됐다고 전하니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전북도민의 기개가 눈앞에 생생하다. 그 중에서도 이리(익산), 남원, 임실 오수의 만세운동은 3.1운동 혈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이리 만세운동을 선두에서 이끌던 문용기 장로는 일본 헌병이 휘두른 칼에 태극기를 든 오른팔이 잘려나가나 왼손으로 태극기를 집어 들고 만세를 부르며 나아갔다. 다시 왼팔이 잘렸지만 계속 만세를 부르다 일본 헌병의 칼에 난자당해 순절했다.

남원 만세운동에서는 방씨 부부의 순국이 가슴을 저민다. 선두에 섰던 26세의 방극용이 일제의 무차별 사격에 희생되자 소식을 들은 그의 아내가 방망이를 들고 일보 헌병을 난타하다가 참혹하게 살해돼 부부순절의 만세운동 애사를 남겼다.

3.1운동 새로운 100년을 맞은 오늘, 다시 역사를 생각한다. ‘모든 것은 다 일컬어졌으나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지식인의 사회 참여, ‘앙가주망의 전통을 연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의 말이다.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들의 아포리즘 위에 분열과 정쟁이 판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겹친다. 망국의 벼랑 끝에 섰던 구한말의 모습이 따로 없다. 3.1정신의 회복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다. 그 시대정신은 마땅히 더불어 사는공화로 수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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