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찾기 어렵다
어른을 찾기 어렵다
  • 전주일보
  • 승인 2019.05.0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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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문광섭 / 수필가
문광섭 / 수필가

그제가 어버이날이었다. 여기저기서 노인들을 모시는 행사를 치르는 모습이 낯설지 않아 그런대로 위안 삼을 만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과연 오늘의 노인이 어른으로 인식되는지 생각했다. 전주 사회에서 어른으로 추앙받던 분들이 작고한 뒤로는 어른다운 어른이 생각나지 않는다. 노인 인구는 갈수록 느는데 어른을 찾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법률적으로야 만 65세가 되면 경로로 어른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노인은 이제 귀찮은 존재일 뿐 어른이라는 개념도 거의 사라졌다. 노인정이나 복지관, 끼리끼리 어울리는 모임이 아니면 노인이 낄 자리가 없다. 일부 간편식이나 커피를 파는 업소에서는 노인이 들어오면 나가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한다. 그런 자리는 스스로 피할 줄 알아야 철든 노인이다.

낄낄빠빠라는 요즘 아이들 말이 있다. 낄 데는 끼고 빠질 자리는 빠질 줄 알아야 한다는 줄임말 속어다. 하지만 노인들은 아예 낄 데가 없다. 음식점에서도 노인은 구석이나 따로 방에 들어가도록 안내한다. 젊은이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금 노인들은 어른 대접은커녕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젊은이의 잘못을 타이르면 욕설이나, 심지어 주먹다짐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어른의 자세를 잃지 않는 이들도 간혹 있다. 스마트 폰 카톡에 올라온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여의도 국회 의사당을 향하여 일갈(一喝)한 글을 읽고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모른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작년 무술년 벽두에도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쓴 소원시를 읽고 또 읽으며 감동했었다. 이 같은 큰 어른들이 살아계시니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올해 천수(天壽)이신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가 말한 75세를 넘기고서야 작고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바보의 의미와 뜻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내가 어른이 되기엔 아직도 턱없이 멀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어령 교수의 글 가운데 남남처럼 되어가는 가족에게는’'이라는 말이 나온다. 대가족 사회에서 성장한 나는 칠십여 해를 살면서 극에서 극까지를 경험하고 있다. 몇 년 전 작고하신 당숙이 생존하셨던 그때까지만 우리 집안에 어른이 계셨음을 실감했다. 내 나이 칠십이 되어서도 당숙 앞에선 입도 방긋 못했다. 내가 대수술을 받기 전만 해도 추석 성묫길은 완행열차처럼 긴 행렬이 줄을 지었다. 올 추석엔 둘째와 손자 등 넷이 단출하니 다녀왔다. 종갓집 6촌 형 내외와 조카들을 본 게 고작이었다. 그 많던 식구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지난해, 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꽃 잔치를 열던 날, 고향에 내려온 친구 K를 따라 그의 탯줄이 묻혀있는 순창군 쌍치면을 갔었다. 성묘를 마치고 그의 큰누이가 사는 동네를 찾아갔다. 폐교된 부지에 마련된 종묘장을 둘러보다가 사무실에 들렀더니, 출입구 쪽 벽에 걸린 작은 편 액자 속의 한문 글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家有一老(가유일노) 世有一寶(세유일보)’ 愚松(우송) ()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세상의 보배와 같다는 사전적 의미의 일반적인 뜻은 짐작하겠으나 쓰신 분의 의중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아서 친구에게 우송이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선친이 미수(米壽) 때 큰 자형에게 써준 글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과 같은 세상을 예견하시고 자손들을 깨우치려 하신 건 아닐까?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처럼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농사를 비롯하여 일상의 모든 일에 있어서 노인들의 지혜와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었다.

중국의 고사에도 노마지지(老馬之智)가 나온다. 전쟁은 승리했지만, 눈보라 치는 혹한에서 길을 잃었다. 이때 장수 관중(管仲)이 늙은 말의 지혜를 빌리자며 타고 있던 말을 풀어 놓았더니, 유유히 앞장서 가는 바람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나이에서 오는 지혜와 경륜을 가리킨다.

 

오늘의 우리 현실은 어떤가? 우선 학교 교육부터가 걱정이다. 선생은 학생에게 꿈을 심어 주고 인격과 윤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한데, 제멋대로 놀아도 방관하며, 도리어 학생의 눈치를 살피는 세태까지 이르렀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불량 청소년과 마주쳐도 눈길을 피하고, 약자가 폭행을 당해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 세상이다. 국회의원들조차 민생은 외면하고 당리당략과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정신을 팔고 있어 국가 장래가 걱정스럽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가정에서부터 어른이 없어지면서 그리되었지 싶다.

난 대수술의 후유증을 겪던 7년 전, 우리 집이나 집안의 어른이기를 스스로 포기했었다. 오랫동안 병치레를 해왔고, 건강이 고비를 넘기던 무렵이라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내 건강이 90% 정도 회복되었기에 집안 대사에 조금씩 나서고 있다.

지역사회에서도 어른의 흉내라도 내고자 부지런히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있으며, 다양한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더구나 25회 세계잼버리가 2023년 우리 고장 부안에 유치되었으므로, 스카우트 경력 40여 년의 경험을 살려서 마지막 노마(老馬)의 지혜를 발휘하여 멋지게 봉사하려 벼르고 있다.

남들이 다 포기하는 어른 노릇을 의욕만으로 할 수 없음도 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동안 세상에서 받은 것 이상으로 되돌려 놓는 일에 힘을 다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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