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삼성의 전북 포비아
글로벌 삼성의 전북 포비아
  • 전주일보
  • 승인 2019.05.08 17: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현재 칼럼
이현재/논설위원
이현재/논설위원

한국 사회에는 두 개의 공화국이 있다. 대한민국공화국과 삼성 공화국이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국가에 정부 구성 원리와 기본권 보장의 기초를 규정한 헌법이 있다면 삼성에도 23만여 직원을 규율하는 삼성 헌법이 실재하고 있다.

한국 사회 두 공화국은 권력의 속성에 있어서 쌍둥이였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는 정치적 독재를, 삼성의 최고 권력자는 경제적 독재를 통치의 절대 수단으로 휘둘렀다. 두 권력 모두 호남 배제의 지역 차별을 운영이념으로 삼았다는 점도 꼭 닮았다.

이 중 정치적 독재는 이젠 불가역적으로 종식됐다. 87 민주화 항쟁으로 군사 철권통치가 종식되고 2017년 촛불 항쟁으로 그 잔재인 선거독재 권력도 무너졌다. 하지만 삼성 총수 일가의 경제 권력은 요지부동이다. 그리고 이것이 8년 전 새만금 MOU로 전북도민의 비극을 불러왔다.

-건조된 피안의 유토피아-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위상은 실로 독보적이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분석한 공정자산 순위를 보면 삼성 62개 계열사의 공정자산은 418조 원으로 2위인 현대차 53개 계열사의 220조 원과 3위인 SK 107개 계열사의 213조 원을 합한 금액과 맞먹는다.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의 280조는 탑10에 포함된 나머지 기업을 합한 총액을 웃돌고 있다.

삼성의 글로벌 위상도 해를 거듭할수록 치솟고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해마다 매출액·자산·순이익·시가총액을 종합해서 산출하는 ‘2018 세계 기업순위에서 삼성의 순위는 14. 50위권인 자산규모에 비해 순익은 탑5에 들었으니 기술력에 기반한 수익 창출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절대 허언이 아니다.

이렇다 보니 세계의 모든 직장인들이 삼성 입사를 꿈꾼다. 글로벌 인터넷 여론조사업체인 유고브가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세계 38개국 1,730개 기업을 대상으로 근로자들이 선택한 최고의 기업브랜드를 선정한 결과 삼성전자는 구글에 이어 종합 2위에 랭크됐다.

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뿐만 아니라 프랑스·네덜란드·노르웨이·독일·미국 등 우리가 선망하는 구미 선진국의 직장인들이 자국의 쟁쟁한 기업들을 제치고 삼성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전북도민의 입장에서 보면 삼성은 짝사랑의 아픈 가시이자 건조한 유토피아일 뿐이다. 그룹의 연간 매출은 국가 예산에 맞먹지만, 서비스상품 시장화를 통해 전북 역내의 자본 수탈을 꾀할 뿐 원천생산력을 높이는 생산기지 구축은 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고위경영진에 호남 출신을 철저히 배제하는 모습에선 지역 차별의 혐오 증세마저 보게 된다.

-삼성 공화국에 만연된 종특’-

채용과 승진의 인사정책에서 삼성이 호남에 드리운 그림자는 음습하기 그지없다. 연합뉴스가 2013년 말 삼성그룹 홈페이지에 등재된 30개 계열사 중 27개사의 사장급 이상 고위경영진 48명의 출신지를 분석한 기사를 보면 서울 21명 등 수도권은 26, 영남은 13명인데 비해 호남은 전무했다. 나머지는 충청 4, 강원 3, 제주 1명이었다.

삼성의 호남 배제는 능력 인사에 따른 우연일까? 우연의 특질은 1회성이다. ‘항상성이 있다면 이면에 의도가 깔려 있기 마련이다.

조영택 전 국회의원이 2005년 삼성그룹의 신임 사장단과 부사장단 인사 52명의 출신지를 연합뉴스 인물정보망을 통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수도권 29, 영남 17, 충청 3, 강원 2, 호남 1명이었다.

이후 18명의 사장을 2선으로 후퇴시켜 이재용 체제를 강화한 20091월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의 대표적인 호남 출신이었던 배정충 부회장과 고홍식 사장이 물갈이되면서 호남인맥은 완전히 사라졌다.

지역별 대학 차별도 완연하다. 삼성전자가 200611월 제출한 분기 보고서의 최종학력을 보면 사외이사·고문·상담역·자문역을 제외한 임원 721명 가운데 지방대 출신은 111. 이 가운데 호남은 전북대 12명과 전남대 2명에 그친 반면 영남은 경북대 63, 부산대 14, 영남대 12명이었다.

물론 재계의 호남 홀대는 비단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4년 주요 대기업 전무급 이상 승진 인사 275명을 출신 대학별로 분류하면 부산대 20(4), 경북대 11(6), 영남대 8(8) 등 영남권 주요 3개 대학은 모두 톱10 안에 들었으나, 호남권 대학은 모두 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다.

출신 고교별로도 영남의 경북·경남고는 각각 5, 부산고는 3명으로 최상위권에 든 데 반해 호남 지역 고교는 상위권 명단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한국 재벌의 보편적인 호남차별 중에서도 삼성의 그것이 유독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삼성 공화국의 지배층에 만연돼있는 하나의 특질을 연상케 한다. 바로 호남포비아.

-모든 차별엔 저항해야-

숱한 논란 속에서도 삼성의 국가 경제 기여도는 막대하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납부한 세금만 11조원을 넘었다. 최근엔 2030년까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133조 원을 투자해 15,000명을 채용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는 현실적이다.

반면에 원칙론적인 측면에서 삼성은 동시에 지역 차별의 대표적인 재벌이다. 두 얼굴의 삼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문제는 인식의 정립이다. 삼성은 국가 경제의 근간인가, 호남차별 재벌인가.

둘 모두일 것이다. 그렇다면 삼성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현실을 앞세워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그리고 모든 차별엔 저항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정언명령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