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그 속절없는 약속
4.27, 그 속절없는 약속
  • 김규원
  • 승인 2019.04.2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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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 /편집고문
김 규 원 /편집고문

지난해 427, 우리는 가슴 뜨거운 감회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휴전선을 넘나드는 남북 정상의 퍼포먼스를 보았다. 70년 가까운 세월에 어딘지 경직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그들이 손을 맞잡고 휴전선을 넘나드는 광경에 전신에 흐르는 감동이 북받쳐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과연 우리는 하나, 같은 말, 같은 얼굴을 가진 민족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평양에서, 판문점 통일각에서 서로 손잡고 얼굴을 맞대며 이 땅의 평화를 약속하고 번영을 기약하면서 가느다란 희망을 보았다. 지난날, 만나던 어색한 자리가 아닌 서로 진정성이 보이는 악수와 포옹에 기대와 희망을 엿보았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에 꺼림칙한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그 일이 우리끼리 약속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점령에 반()식민지로 전락한 우리는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더욱 미국에 매달렸고 전쟁이 끝나고도 그들의 전초 기지화하면서 냉전의 희생물이 되었다. 그때부터 미군은 지금까지 점령군의 지위를 유지하며 이제는 그들의 주둔비용(화장실 청소비용까지)을 도맡아 감당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우리의 국내문제까지도 중요 사안에 대해서 간섭을 해왔고 소파(SOFA) 협정으로 아직도 점령군의 위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대외문제, 특히 우리의 근본문제인 통일을 논의하는 데에도 사소한 데에까지 미국의 승낙을 얻지 않으면 아무 짓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서 무엇을 약속하든 남쪽의 일거수일투족은 미국의 조종 아래서만 가능한 일이다. 세계 역사에 없는 기나긴 전쟁, 무려 69년 동안 우리는 전쟁을 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중단된 상태인데, 이 휴전을 종전으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어물쩍하는 사이에 우리는 요즘 아이들의 속된 말로 빼박상태에 있다.

북한은 한국전에서 엄청난 수의 중국군대가 희생을 치른 덕분에 두만강 넘어까지 밀렸던 전세를 회복하고 정권을 유지했으면서도 주둔군을 용납하지 않고, 중국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간섭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해방 후에 친일 세력을 철저히 가려내 응징하기 시작했다. 그 친일 세력이 북한당국의 손길을 피해 남으로 도망쳐온 서북청년단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주체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소련 등 외국 세력에 기댄 정치집단을 모두 숙청해서 자력갱생의 길을 걸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해방 이후 미 군정 아래서 친일파들이 군정을 도우며 미국의 졸개가 되었고 그들은 다시 새로 수립된 대한민국의 이승만에 충성하며 친일청산의 칼날을 피했다. 친일을 청산한다는 반민족행위 조사 특별위원회(반민특위)이 만들어져 친일파를 잡아들이고 조사하기 시작하자 현직 경찰 수뇌부까지 친일 세력으로 가득했던 상황에서 이승만은 경찰을 동원하여 반민특위를 습격하고 서류를 빼앗아 반민특위를 무력화했다.

우리는 그렇게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 세력을 이 사회에서 격리하는 친일청산을 하지 못했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원조물자에 매달려 호구를 유지하면서 다시 친미세력이 양산되기에 이른다. 친미집단은 친일파를 주종으로 강한 쪽에 붙어야 산다는 족속이다.

거기에 5.16 친일파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그들은 완전히 득세하여 이 나라의 중심세력이 된다. 그들의 2, 3세들은 지금 나라의 중요 부서와 자치단체의 요직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 친일 세력 척결 운운하지만, 어림도 없는 헛노래일 뿐이다. 그들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운데서 무엇하나 그들 모르게, 그들의 힘이 미치지 않게 진행할 일이 없다. 그들, 친일과 친미 등 외세를 추종하는 무리가 요처에 우글거리는 가운데서 대통령과 일부 진보 인사가 아무리 자주와 독립을 꿈꾸어도 그건 봄날의 개꿈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약속은 애초부터 그냥 상징적인 소망일 수밖에 없었다. 칼자루를 쥔 미국이 한반도 평화나 종전을 원하지 않는데, 칼 등에 타고 있는 반()식민지의 대통령이 아슬아슬한 춤사위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우리의 외교권을 일제에 빼앗겼을 때는 전국의 유림이 일어나 항의도 하고 그해 11월 황성신문 사설은 是日也放聲大哭을 실어 민족의 울분을 쏟아냈지만, 오늘의 우리 거대 보수언론들은 미국의 반식민지 상태를 반기는 모습이다.

북한의 김정은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국제사회에서 활용하기 시작하여 중국과 러시아와 연계한 한반도 문제 다자개입 해결을 노리는 듯 외교적 접촉을 늘리고 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의 메시지를 단 깃발을 흔들어도 냉랭 보살이고 4.27 공동 선언 기념행사는 공동 아닌 일방적 안간힘으로 끝났다. 북한 김정은은 우리에게 미국에 매달려 헛물만 켜지 말고 민족 차원에서 한반도 독자노선을 걷자고 신년사에서 제안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그동안 타자로부터 강요받아온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신한반도 체제를 새롭게 구축하자는 제안을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에 기고한 글을 통해 밝힐 거이라고 한다. 그 제안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제안이 나오면 친미 보수세력이 일제히 목에 핏대를 세우고 달려들지 않을까 싶다.

암튼 이대로는 안 된다. 정말 나라와 민족이 사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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