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시간, 그 후 3년
늑대의 시간, 그 후 3년
  • 전주일보
  • 승인 2019.04.24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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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 재/논설위원
이현재 / 논설위원

2011년 5월은 전북 공공기관 이전사(史에) 있어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었다. 어둠과 빛이 혼재하는 해질녘, 석양의 실루엣에 가려져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검은 물체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시간.

LH공사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던 그때, 이명박 정부의 LH공사 이전 후보지가 경남 진주 쪽으로 기울었던 전북의 상황 또한 사회적 ‘개늑시(時)’였다.

그리고 가뜩이나 어둑어둑해진 시대의 어둠 속에 삼성이 정부와 함께 새만금에 대규모 신재생사업 투자MOU를 제안하자 전북도민은 불명의 그 MOU를 차라리 개이리라 단정하고 말았다.

MOU의 실체가 진실이었다면, 인류사의 갈림길이었던 40,000 년 전 늑대를 길들인 개와의 협업으로 사냥에 나서 기존의 원시인류 네안데르탈인을 제치고 유라시아 대륙의 새로운 지배자로 부상한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처럼, 전북은 삼성과 함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을 터였다.하지만 숱한 논란 끝에 5년 만에 드러낸 그 실체는 알다시피 늑대였다.

◇ 극과 극의 지방세수 편차

늑대를 개로 오인함으로써 입은 전북의 상처는 실로 깊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김도읍 한나라당 국회의원(부산 강서구을)이 지난 2017년 6월 분석한 ‘공공기관 이전 지방세수증대 효과’는 지방세수에 있어 빈껍데기로 전락한 전북혁신도시의 실상을 웅변한다.

이전사업이 시작된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지방 이전 공공기관이 창출한 총 지방세는 4,038억 원. 이중 전북은 46억 원으로 전체의 1.1%에 불과한 반면 경남은 297억 원으로 7.4%에 이른다.

지방세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2016년 한 해만 따져보면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총 2,038억 원 가운데 전북은 1.0% 21억 원, 경남은 10.7% 219억 원으로 격차가 심해졌다. 그 편차가 거의 영구적으로 지속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늑대’를 ‘개’로 오인하고 온 거리를 플래카드로 장식하며 마중했던 당시의 기억이 더욱 쓰라릴 수밖에 없다. 상황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삼성MOU 이전에 프리퀄이 있다.

노무현 정부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결정했을 때 각각 독립적인 공기업이었던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는 전북과 경남이 각각 1순위로 선택한 알짜배기 핵심 기관이었다. 그리고 그 규모의 차이는 두 배 이상이었다.

통합 직전 토지공사의 지방세 납부액은 185억 원에 달한 반면 주택공사는 88억 원에 불과했다. 여기에 LH공사를 진주로 일괄이전 하는 보상으로 경남이 전북에 내준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지방세수는 6억 원에 그쳤다.

암울한 스토리의 프리퀄을 써내려갈 때 정치권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전북 배제 행태야 두 번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통합민주당의 석연찮았던 태도는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LH공사의 경남 일괄 이전을 밀어붙일 때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다 정부의 정책이 확정되기 직전에야 형식적인 반대 당론을 내놓았다.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180만 전북도민을 외면하고 700만 경남·부산을 의식한 ‘정략적’ 태도였다는 지적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집토끼인 전북은 우리 안에 갇혀 있으니 산토끼를 쫓겠다는 심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완주 도정과 삼성이 이명박 정부의 장단에 춤을 췄다는 의심도 떨칠 수 없다. MOU 체결 당시 삼성은 이미 내부적으로 새만금 투자의 핵심인 태양광사업을 ‘5대 신사업’에서 배제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국가권력, 자치권력, 글로벌 경제권력이 야합해 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벌인 대 전북도민 사기극으로 써내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현재 진행형인 ‘LH이전’의 교훈

LH사태 8년, 당시 상황이 ‘늑대의 시간’으로 판명된 지 3년, 전북도민은 그 기억을 마냥 망각으로 흘려보낼 뿐인가.

삼성MOU 체결 당시 김완주 도정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기초자치단체의 장으로 당선돼 명예와 권력을 더하고 있다. 공직사회의 속성 상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헤아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단순히 상급자의 명을 받드는 공직자가 아니라 도정을 운영했던 핵심 간부였던 점을 감안하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전북도민이 막대한 손실에 직면했을 때 침묵으로 외면한 처세에 대해 두고두고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완주 전 지사는 전북도의회의 청문회에서 선의를 강조했다. 하지만 개인 사이에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선의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하물며 전북도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사람이 지방정부 수장임에야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진실의 시간은 왔지만 혼돈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혁신도시 시즌2를 공언한 가운데 전북혁신도시의 제3금융중심지 지정을 두고 이번엔 부산과 전북의 갈등이 예고돼 있다. 전북혁신도시 금융중심지 지정은 LH공사 경남 일괄이전과 맞닿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그 관심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의 이전 후보지다. 그리고 최근 제3금융중심지 지정을 유예하는 용역 결과가 나왔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상념을 떨칠 수 없다. ‘한 번 속으면 실수지만, 두 번 속으면 바보’라는 경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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