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신문의 길
지역, 신문의 길
  • 전주일보
  • 승인 2019.04.0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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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호 변호사
최영호 변호사

 호구 조사는 간단하지 않지만, 머리가 굵어진 이후 전주에 살고 싶었다. 내 아버지의 고향도, 어머니의 고향도, 내 고향도, 내 아이의 고향도 전주이다. 생각해보면 전주에 산다는 건 혜택이었다. 내 고교 동창 중 절반 넘게 자의 반, 타의 반 고향을 떠나 살고 있었다. 서울, 서울, 서울. 중앙, 중앙, 중앙. 각기 사연은 다르지만 일자리를, 혹은 출세를 위해 고향을 떠났다.

서울로 간 친구는 당연히 그 이유가 있었다. 우리 지역에 산다는 건 일종의 천형이었다. 차별과 격차. 영호남 차별을 얘기하다, 수도권 격차를 얘기하다, 다시 호남 내 차별과 격차를 얘기하고 있었다. 선출직들은 중앙에 예산을 요구한다고 했는데, 가만 보면 읍소하는 것 같았다.

스카우트 행사를 유치했다고 현수막이 거리를 도배했고, 다 큰 어른이 목에 스카우트 스카프를 묶고 다니는 낯 뜨거운 장면을 연출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어느 영화 대사가 내게는 ‘돈도 없고, 가오도 없다.’라고만 들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반세기에 걸친 독재, 차별, 산업화, 영호남, 수도권 이란 단어를 언급하며, 우리 지역의 현실을 분석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민주화 이후 30년 간 이어진 하나의 정당이 지방의회, 단체장, 국회의원을 휩쓰는 독점 정치. 중앙 정당의 공천권 눈치 보기 급급한 하청 정치. 그 정치에 기댄 사회와 경제. 이제 우리가 남 탓만 할 수 있을까?

학연과 지연으로 얽히고설켜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좋게 말하면, 지역사회였지만, 실상은 서로 눈치만 보는 숨죽인 공간, 심지어 정당까지 하나였다. 서로 날 선 비판과 견제를 할 이유는 없었으며, 누가 중앙에 줄을 잘 대고 있느냐가 정치적 성공의 비결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30년 간 건강하게 성장하고, 건강하게 경쟁하고 견제할 기회를 놓쳤다.

우리의 모습을 두고 누군가는 반세기 차별을 얘기하지만, 어쩐지 30년 독점과 하청 정치가 원인인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몸은 전북에서 살지만, 눈과 귀는 모두 서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체장은 중앙 정부의 유력 인사, 정당의 유력 인사와 친분을 과시하며 국가 예산을 가져오는 것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홍보했다. 지역 정치는 공천권을 쥔 서울 정치의 하부 기관에 불과했다. 그나마 있는 대기업 공장은 서울에 본사를 둔 작은 지방 공장에 불과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관심사는 서울에 있었다.

우리 지역의 주 뉴스는 30년째 새만금이다. 30년간 지역 공약은 새만금에 머물러 있고, 우리의 상상력 역시 새만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0년간 같은 뉴스를 보고 있으니 사람들의 지방 소식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중앙으로의 권한 집중, 이어진 지역 정치의 독과점, 그리고 단조로운 이슈가 맞물려, 우리 지역은 당연히 우리 지역 이슈에 대해 무관심해졌다. 그리고 이어서 지역 이슈에 대해 알리고 비판해야 할 지역 신문은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정치인, 정치 지망생 외에는 보지도 읽지도 않는 신문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스스로를 차별과 소외라며 낙인찍었듯이 우리 지역을 건전하게 비판하고 견제할 지역지를 스스로 비하했다. 서울 유수의 신문사를 언급하며, “저게 무슨 신문이야.”라고 조롱했다. 그렇게 지역 정치와 지역 언론이 맞물려 이슈도 비판도 없이 스스로 조롱하는 유령도시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지역지가 없다면, 누가 우리 정치와 우리 행정을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을까?  지역지가 없다면, 누가 우리 지역의 얘기할 수 있을까? 지역지가 없다면 우리가 차별과 낙후라는 스스로의 낙인을 걷어낼 수 있을까?

지역 발전의 시작은 견제와 균형이다. 건강하고건전한 비판과 견제가 우리 지역을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스스로 비난과 비하, 조롱을 멈추자.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쉬쉬하며 적당히 넘어가는 관행을 벗어나야 한다. 지역은 꿈틀꿈틀 움직여야 한다. 다양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건강하게 비판하고 건전하게 대안을 제시하는 환경이 그 시작이다.

전주일보의 창간 13주년을 축하하며, 전주일보가 우리 지역의 건강하고 건전한 발전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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