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벌초
데스크칼럼- 벌초
  • 이옥수
  • 승인 2008.09.08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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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 사상이 유별난 우리나라에선 돌아가신 조상 모시는 격식이 퍽이나 까다롭다. 옛날에는 부모상을 당하면 탈상 때까지 벼슬과 생업마저 버리고 산소 곁에서 3년 내내 시묘살이 하는 것을 자식 된 도리로 생각했다.
 묘에 조상의 혼백이 머물러 있다고 여겨 묘소관리를 철저히 했다. 조상과 자손은 생사를 초월하여 하나의 가족 공동체를 이루며 조상의 기는 그대로 자손에게 이어진다는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묘를 주로 야산에 조성, 여름철이면 온갖 잡초가 봉분과 주변을 뒤덮는다. 그래서 추석 성묘를 앞두고 이러한 잡초를 베고 묘지를 단장하는 벌초(伐草)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추석 때 성묘 와서 벌초를 안 했으면 보기에도 흉할 뿐만 아니라 불효의 자손을 두었거나 임자 없는 묘라 해서 남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했는지, 아니면 지성을 드렸는지 마음속까지 읽어내 그 집안의 효행 내력과 됨됨이를 평가했다.

벌초는 자손의 효성과 도리를 다하는 척도이자 엄연한 풍속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니만큼 무연고 묘라도 부락민들이 대신 벌초를 했다. 지금도 추석 때면 조상 묘에 벌초하러 가는 인파로 교통대란이 일어난다.
 벌초는 자신의 처지를 점검하고 가족 친지들과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 못다 한 얘기를 나누며 가족의 정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자리이기도 하다.

조상의 행적을 기리며 가족·친지들이 우애를 다지는 행사다. 떨어져 있었기에 소원해질 수도 있었던 가족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벌초 의식도 최근 많이 바뀌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낫을 잘 들게 갈아 새끼로 감은 채 조상 묘를 찾아가서 벌초를 했다. 이후 ‘예취기’라는 벌초용 기계가 나와 벌초하는 시간과 품을 많이 줄게 해주더니 몇 년 전부터는 벌초대행업이 등장, 바쁘고 멀리 있는 후손들을 위해 돈을 받고 벌초를 해줘 편리하게 됐다.
 여기에 최근에는 ‘인터넷 벌초’라는 것도 출현해 화제다. 인터넷으로 벌초를 신청하면 작업을 대행해 주고 그 결과를 디지털 사진과 동영상으로 e-메일을 통해 보내준다.

벌초 전의 산소 모습과 풀을 깎는 장면, 벌초 후의 모습을 카메라로 자세히 찍어 동영상을 만든 다음 신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농촌 인구의 고령화 등으로 고향 주민이나 친척에게 부탁하기가 어려워지고 생업에 쫓기고 교통난에 시달리는 후손들에겐 이나마도 고마운 일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손수 조상의 묘를 돌보는 전통이 점차 퇴색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볼 일이다. 아무리 현실적 효용성이 있다고 하지만 이러다간 아예 벌초가 필요 없는 인조 잔디 묘가 출현할지 모르겠다. /이옥수 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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