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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하얀 그곳이 잊힐리야금요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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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0  14: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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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숙/수필가

큰너그니재를 넘어서 무랑골 고향 집 싸리문을 들어서니 누렁소의 워낭소리가 정겹다. “이라! 워 워!” 아버지의 소 부리는 소리도 새벽녘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려 메아리 되어 골골이 흩어진다.

유년 시절 행복했었던 고향 집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깊이 새겨 있건만, 부모님의 땀방울로 일궈서 옥수수 심고 감자 심던 비탈진 밭떼기는 돌보는 이 없는 묵정밭으로 세월에 묻혀 산자락과 한 몸 된 지 오래다.

무랑골 집을 떠나 강릉으로 이사 한 게 내가 고등학교 때니까, 30년은 족히 흘렀으리라. 부모님 살아계실 때야 당신들 소일거리로 이것저것 채소와 곡식을 심어 가꾸고 수확하는 재미로 왕래하셨지만, 두 분 다 돌아가시고 빈집 된지 수년째이다.

부서지고 허물어진 빈집을 바람이 반쯤 뜯어내서 제집 드나들듯 한다. 흙먼지가 더께를 이루어 쌓인 마루는 그동안의 세월을 대신한다. 버림받은 세간은 기억하기 싫은 상처로 남아 나뒹군다. 텅 빈 집채는 식구들의 온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기다림에 지친 병이 깊어져 더는 버틸 여력이 없었던 것일까?

한쪽으로 갸우듬히 기운 채, 함석지붕은 피눈물을 뚝뚝 흘리고, 볏짚 섞어 발라놓은 황토벽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안방을 훤히 드러내보이고 있다. 한때 열정으로 들끓어 식구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솥단지가 덩그러니 남아있는 정지에서 금방이라도 불쑥 어머니가 나오실 것 같다.

너덜너덜 누더기가 되어 바람에 휘둘리는 안방 문을 살짝 열어본다. 문고리를 잡아당기자 그동안 방안에 품고 있던 아버지의 화통한 웃음소리가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오 남매의 재잘거림도 왁자하다. 온 가족이 등 디밀고 온기 쟁탈전하던 아랫목의 누런 황토벽은 아직 그 넓은 가슴 다 내놓고 기다림에 지쳤다.

부모님의 오직 사는 낙이었던 오남매의 상장들이 줄줄이 도배되었던 벽에는 여태 그 흔적을 다 지우지는 못했는지 띄엄띄엄 누런 종잇조각이 벽에 착 달라붙어 있다. 일곱 식구가 부대끼던 그 시절이 요즘 들어 자꾸 삐걱삐걱 기억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시작한다.

너나없이 고단했던 시절, 그때는 어떤 부모든 그랬을 것이다. 자식을 바라보며 몸이 부서져라 농사를 지었을 부모님 그리고 땅뙈기, 자식과도 같다며 애지중지하던 소의 보금자리 외양간, 어느것 하나 세월에 남아난 것이 없다.

한때는 동네에서 우리 집 소를 안 키우는 집이 없을 정도로 잘 나갔다. 호사다마라던가 어느 겨울 한우 파동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거기에다 큰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아버지는 사촌들의 대학 등록금까지 부담했다. 그때 나는 소 한 마리 값이 한 학기 대학 등록금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 바로 위 오빠가 사춘기에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사건이 터지는 수만큼 외양간에서 소의 숫자가 줄기 시작했다. 그래도 부모님과 부대끼며 살았던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은 늘 아련한 그리움이다.

눈 감고 가슴 닫아도 되돌아가고 싶은 곳, 감자 꽃이 하얗게 피고 지고 산의 품속에서 들과 개천의 봄을 업고 뛰놀던 곳, 버들피리 만들어 불며 찔레 순 따서 주전부리하던 그곳이 나뭇가지 끝에 새벽달 빛 한 광주리 걸려 있듯, 마음 끝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옥수수 알갱이처럼 촘촘했던 고향 마당에서의 기억을 다 펼쳐보기도 전에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때 아닌 뻐꾸기가 울어 잠이 깨었기 때문이다. 아직 아버지는 밭고랑도 다 못 타셨는데, 고랑 타시는 아버지께 새참도 못 내다 드렸는데. 새벽 다섯 시에 맞춰놓은 내 휴대전화 알람이 뻐꾸기를 데려오는 바람에 오랜만에 내 고향 정선 임계, 내가 살던 무랑골 집 안방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말았다.

어제저녁에 갓김치 다지고 돼지고기 갈아 소를 만들어 만두를 빚었다. 빚어서 냉동실에 보관하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만두를 빚자니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났다. 어머니는 만두를 자주 빚으셨다. 가끔 나도 달려들어 빚어보지만, 어머니가 빚는 모양만 흉내낼 뿐이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만두를 예쁘게 빚어야 나중에 시집가면 너처럼 예쁜 딸을 낳는 거야.” 하시며 은근히 당신 딸이 예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시곤 했다. 나는 그 말을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만두를 빚었고 이제는 어머니가 빚으셨던 그 모양을 닮아가는 중이다. 만두를 빚으며 ‘나도 예쁜 딸을 낳았다.’고 혼잣말로 인정 하면서 말이다.

내 고향에서는 섣달그믐날이면 만두를 먹어야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하여 만둣국을 먹는 풍습이 있다. 만두를 빚을 때 하나의 만두에 엄지손톱만 한 작은 만두를 여러 개 넣어 복 만두를 한 개 만든다. 그 만두를 먹는 일은 복불복이었다. 만두를 먹은 사람이 새해 복을 몽땅 가져간다고 했기에 만둣국을 먹으며 치열하게 복 만두를 찾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았다. 그시절,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시던 부모님 생각에 다시 가슴이 아렸다.
 

그래도 다행이다. 컬트를 잇 듯, 기억의 쪼가리들을 조각조각 이으며 늘 오늘 앞에서 어제를 겹쳐 볼 수 있는 고향이 그곳에 있으니 말이다. 여전히 고향 집 마당에는 바람에 몸 맡긴 마른 기억들이 바스락 거리고 잠에서 깬 나는 그 소리에 한동안 갇혀서 헤맸다. 오늘도 나의 기억에 향수의 몫으로 남아 삭히는 것은 나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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