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舍利) 나온 여자
사리(舍利) 나온 여자
  • 전주일보
  • 승인 2018.12.1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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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영 숙/수필가

담낭절제술을 받았다. 쉽게 말해 ‘쓸개 빠진 년’이 된 것이다. 가끔 오목가슴 쪽에 심한 통증이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진통제를 먹으면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진통제를 먹어도 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심해졌고 결국은 응급실에 실려 가 초음파 검사를 통해 담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담낭에 생긴 염증이 췌장까지 염증을 유발해 보름간 금식을 하며 염증을 치료한 후에 수술할 정도로 그 정도가 심각했었다

쓸개는 오장육부 중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한 육부 중의 하나인데 하루에 900mL 정도의 담즙을 생산한다고 한다. 이 담즙은 담도와 담낭을 통해 십이지장으로 분비되며, 지방 소화, 콜레스테롤 대사, 독성물질 배출 등의 생리적 기능을 한다. 성분은 콜레스테롤, 지방산, 담즙산염 3가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의 구성 비율은 생체 내에서 아주 정확하게 조절된다. 이 성분구성 비율이 맞지 않으면 이로 인해 찌꺼기가 생기고, 찌꺼기가 뭉쳐져서 돌처럼 단단하게 응고된 것을 ‘담석’이라고 하는데 그 담석이 쓸개에 생긴 것이다. 내 경우는 비만에서 오는 ‘콜레스테롤 담낭결석’이라 했다. 비만인 사람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담석의 위험이 크므로 고칼로리 또는 고콜레스테롤 식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식단 진단도 덤으로 받았다.

처음에는 하루빨리 염증이 나아서 수술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수술을 앞두고 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겁도 났거니와 쓸개 없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한몫했다. 흔히, 하는 짓이 줏대가 없고 온당하지 못한 사람을 비난 조로 이르는 말로 쓸개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도 쓸개 없는 사람이 되는 일이맘에 들지 않았다.

담당 의사는 “쓸개 빠진 사람이 미련하게 아픔을 참으며 병을 키우는 간 부은 사람보다는 낫지 않겠어요?”라며 어설픈 아재 개그로 나를 안심시켜놓고선 내 몸에서 무려 스물일곱 개의 돌이 붙은 쓸개를 잘라냈다. 수술 후에 시어머니는 “무슨 쓸개에 돌이 포도송이처럼 박혀있냐?”하시며 화장지에 싼 돌을 보여주셨다.

병문안 온 지인들도 얼마나 정신수양을 하면 그렇게 많은 사리가 나올 수 있냐며 놀렸다. “이제는 모든 일에 더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정말로 쓸개 빠진 년이라고 놀림 받기에 십상”이라며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나 또한, 이에 질세라 몸에서 돌도 꺼내고 장기도 하나 떼어냈으니 몸무게도 확실히 줄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여유를 부려보지만, 정말로 쓸개 빠진 사람처럼 실실거리며 웃는 건 아닌지, 정말로 줏대가 없어지는 건 아닌지 슬쩍 걱정되었다.

퇴원 후 걱정과는 달리 정신은 멀쩡한데, 위와 장이 줏대가 없어진 듯했다. 음식을 먹기만 하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야 하거나, 뱃속이 부글부글 시장통처럼 들끓기 일쑤다.

수술 후 담당 의사는 쓸개가 없어도 담즙은 정상적으로 간에서 생성하고 배출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조금 필요한 것 같다. 오십 년 넘게 각기 일에만 충실했을 터인데, 느닷없이 담즙 주머니가 사라지고 남의 일까지 덤으로 맡았으니 장기들도 아직은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며칠 전에는 지인이 찾아와서 “이 약국은 쓸개 빠진 년이랑, 속없는 놈이 함께 근무하네요.”하며 농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일하는 약사도 20여 년 전에 위암으로 위 절제 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그 말에 “우리는 결코 줏대가 없거나 실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단지 남들보다 먹는 것에 좀 까탈 부릴 뿐”이라고 말하고 “속없는 놈, 쓸개 빠진 년이란 소리 안 들으려면 행동거지 정말로 조심해야겠다”라며 웃어넘겼다.

어려운 일을 과감하게 추진하거나 겁 없는 언동을 하는 사람을 '담이 큰 사람'이라고 한다. 또 벨도 없이 어리벙벙한 사람을 '쓸개 빠진 사람'이라 한다. 모두 순발력이나 언행이 쓸개(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표현이다. 동양학에서는 쓸개를 중정지관(中正之官)이라 하여 냉철하고 이성적 판단으로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중도와 바름을 지키는 관리를 비유하고 하는데 과연 '쓸개 빠진 놈'이란 말의 시원(始原)은 어디일까?

이는 옛 어른들이 볼 때 유난히 소심한 듯 보이는 노루를 보고 이를 사람에 적용하여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른 동물보다 잘 놀라고 도망가거나 주변을 유난히 두리번거리는 노루를 보고 쓸개가 없으므로 그리 멍청하다고 본 것이다. 사실 노루는 쓸개가 없다. 그러나 쓸개가 없는 동물이 어디 노루뿐이랴. 사슴, 말, 낙타, 기린 코끼리 등 수없이 많다. 이들은 하나같이 수시로 먹이를 먹는 동물로 먹이를 소화하려면 담즙이 계속 필요하기에 저장할 필요가 없어 그 주머니를 가지지 않은 동물이지 결코 멍청한 동물은 아니다.

쓸개가 없으면 우리 몸이나 정신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의학적인 답변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일 아니겠는가. 이 없으면 잇몸으로 버틴다고 하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면 내 소화 기능도 또 다른 살길을 찾아서 제 할 일을 잘해 낼 것이며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쓸개 빠진 년이 간 부은 년보다는 훨씬 속 편히 산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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