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알아야 준걸(俊傑)이다
때를 알아야 준걸(俊傑)이다
  • 전주일보
  • 승인 2018.11.1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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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신영배/발행인

오색찬란하던 가을의 멋진 풍광도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회색빛으로 변하는 초겨울이다. 지난봄에 추위를 뚫고 연둣빛 새싹을 내밀어 여름 내내 푸름을 자랑하고 가을에는 고운 색을 뿜어내던 잎이 이제는 지난 시간의 영광을 조용히 내려놓는 시간이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단 몇초의 순간을 놓쳐서 오랜 시간 후회 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내다가 영어의 몸이 되기도 한다. 그들 모두 하지 말아야 할짓을 했거나, 물러갈 때를 모르고 덤벙댔기 때문이다.

엊그제 오랜만에 빅 뉴스가 터졌다. 지난 2010년 9월에 전북인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안기고 잠적한 최규호 전 교육감이 인천에서 검거됐다. 무려 8년 2개월만에 그가 체포됐다. 그 긴 시간 동안 검찰과 경찰력이 과연 그를 잡을 수 없었을까?

시계를 돌려 최규호 교육감 시대로 가보자. 지난 2007년 김제 ‘스파힐스 골프장’ 사업주는 9홀짜리 퍼블릭 코스를 18홀로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해당 지역의 개인 토지를 사들이는 건 가능했지만, 대상 지역 안에 학교부지 매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학교부지는 그냥 매입할 수 없고 도시계획 변경이 필요한 데다, 소유권이 전북교육청이어서 공유재산을 매각하는 절차까지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편법이 등장한다. 사업주는 교육청과 김제시에 일을 수월하게 처리할 기름(?)을 치면 모든 절차가 살갑게 돌아갈 수 있다는 삶의 지혜(?)를 동원했다.

당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던 최 교육감에게 3억원이라는 거액과 당시 김제시장에게도 불상의 금액이 전달됐다. 당시 3억원이면 전주에서 33평 아파트 3채를 사고 남는 거액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전달된 윤활유 이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좋을 때 좋은 것이어서 어디선가 틈이 벌어져 일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2010년 8월 내내 이 거액 수뢰설이 뉴스를 장식하다가 여론에 밀린 검찰이 최규호 전 교육감을 소환하게 된다. 이때 검찰은 최 전 교육감에게 돈을 전한 교수 등 직접 전달자의 조사를 끝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최 전 교육감을 소환했다. 일반범죄 용의자였으면 조건없이 체포했을 것이다는 것이 법조계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당시 최 전 교육감은 겉으로는 한 사람의 자연인에 불과했지만, 전북 지역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특히 그의 동생 최규성이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간사였고 제수 이경숙도 비례대표 국회의원 신분이었다. 한 집안에 두 사람의 국회의원과 교육감이 한 시대에 나온, 그야말로 로열 패밀리였기 때문에 뻔히 범죄를 인지하고 증거확보까지 하고도 체포영장을 발부받지 않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몇 차례를 미룬 끝에 최 전 교육감의 변호인단은 2010년 9월12일 검찰에 출두하겠다고 약속했다. 방송 카메라와 신문기자들이 검찰청에서 목이 빠지게 최 전 교육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변호사들은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말할 뿐, 아무도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언론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이 사건을 회고하고 밀항설, 사망설, 서울 동생의 집에 있다는 설 등 갖가지 설과 억측이 난무했다. 검찰은 기소중지와 현상금 200만 원을 걸고 신고를 기다릴 뿐이었다.

이후 지난 8월 전주지검 인사가 단행됐다. 지휘라인도 교체됐다.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최 전 교육감을 찾기 시작했다. 검찰은 최규성 농어촌개발공사장의 건강보험이 인천지역에서 주기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주목했다. 결국 그는 인천에서 검거됐다. 그가 잠적한 지 무려 8년 2개월 만이었다.

최 씨를 검거한 검찰은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이어 동생인 최규성 농어촌개발공사장의 집무실과 서울과 전주의 집, 휴대폰 등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피의사실에는 범인도피교사죄 · 국민건강보험법 위반 등이다.

범인도피죄는 가족이므로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타인을 시켜 편의를 제공하거나 도와주었다면 범인도피교사죄가 성립한다. 또 본인의 건강보험증을 빌려줘 최 전 교육감이 치료를 받았다면 명백한 건강 보험법 위반이다.

아직 최규호 전 교육감의 도피 행각이 모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현재 밝혀진 내용은 일반범죄 도피자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안정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단골 죽집에 식사하러 다니고, 가명으로 골프를 즐기기도 했다니, 요즘 말로 ‘황제 도피 생활’을 한 셈이다. 오랜 도피 생활을 하는 동안에 동생인 최 사장은 언제나 형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연좌제’까지 들먹이며 억울해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최 전 교육감이 최규성 사장의 건강보험을 장기적으로 사용한 점이나, 곧 밝혀질 터이지만 가명의 대포폰과의 통화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 얼마나 도와주었는지 모르지만, 지탄 받을 죄를 저지르고 잠적한 형을 감싸고 도우면서 제3자의 조력을 요구하기도 했다면 법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최규성씨는 범죄용의자의 가족에 앞서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공사 사장직을 수행하고있는 공인이다. 최규성 사장은 '때를 알아야 준걸(俊傑)'이라는 말을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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