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세습 사회의 비극
부동산 세습 사회의 비극
  • 전주일보
  • 승인 2018.10.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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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에나 자식 잘못 가르쳐 집안 망치는 부모는 있어 왔다. 1636년 인조 14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했을 당시 영의정 김류의 아들 김경징은 강화도 방어 책임자였다. 청나라 기병대가 서울로 쳐들어 오자 미처 피하지 못한 인조는 두 아들과 세자빈, 원손등을 먼저 강화도로 피난 시켰다. 자신도 곧장 뒤따를 요량이었으나 청군의 진격 속도가 너무 빨라 방향을 급히 틀어 피신한 곳이 남한 산성이다.

그 난리통에 강화도 방어 책임자 김경징은 아버지 김류가 천거해 발탁한 인물이었다. 요샛말로 하자면 김경징은 금수저 가운데 최고 금수저였던 셈이다. 김경징은 인조 반정에 가담해 과거 급제를 하기도 전에 2등 공신 군(君) 칭호를 받을 정도로 출세 가도를 달렸다. 젊은 나이에 지금의 서울시장 직분이었으니 대단한 금수저다.

그런 김경징에게 백척간두 위기에 처한 나라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자기 이익에 몰두 한다. 난리 판에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를 덮개가 있는 가마에 태우는가 하면 금은 보화가 가득 든 짐 보따리 수백개를 져 나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동원한다. 그의 가족과 친척을 먼저 태우려 하다 세자빈이 배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참다 못한 세자빈이 “경징아, 경징아! 네 어찌 이럴수 있느냐.”고 호통치자 세자빈만 슬그머니 강화도에 내려 놓은 인물이다.

강화도에서 김경징이 한 일이라고는 매일 술판 잔치를 벌이는 일이었다. 청군이 들이 닥치자 김경징은 쪽배를 타고 충청도로 혼자 도망쳐 버린다. 이정도면 망나니 금수저로 기억되기에 충분하지 않는가. 결국 그는 끝내는 사약을 받고 만다.

요즘 라면 박스에 5만원권을 가득 채우면 한 5억원쯤 들어간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30억~40억원짜리 아파트를 자식에게 사주는 사례가 심심치 않다는 소식이 들린다. 현금을 꽉꽉 채운 라면 박스. 라면 박스 현금은 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집 금고에 보관해오던 현금을 여기에 담아 전달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수십억짜리 아파트를 받아든 자식은 또 부모에게서 무얼 배울까. 하긴 초등학생들의 장래 꿈이 ‘건주(건물 주인)’인 나라에서 그까짓 현금 아파트가 대수이겠는가.

종부세 한번 내보는 게 꿈인 필자 같은 사람이야 딴 세상 얘기다. 인조 실록을 기록한 사관은 김경징에 대해 이렇게 썼다. “탐욕과 교만을 일삼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자식 김경징을 김류가 잘 못 천거해 나라도 망치고 집안도 망쳤다.”

돈 있어 아파트 수십억짜리 서 너채를 사준다 한들 어떻겠는가. 그렇게 쉽게 배운 인생은 망가지기도 쉽다. 사줄 때 사주더라도 “돈도 실력이다”고 가르치지는 말 일이다. 자식 정유라의 말 한마디로 최순실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걸 잊지 말라. 부의 세습이 불러온 비극은 꼭 옛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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