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르라미를 기다리며….
쓰르라미를 기다리며….
  • 전주일보
  • 승인 2018.09.0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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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고 운/수필가

연일 찜통더위에 어렵게 잠을 청하고 잠이 들었다가도 자주 깬다. 창문을 열고 잠들면 더워서 깨고 에어컨을 돌려 잠을 청하면 추워서 깬다. 끝없이 열대야가 이어지는 이런 더위가 1994년에 있었다고 하지만, 내 기억에는 올해가 제일 더운 해가 아닐까 싶다. 어서 더위가 가고 선선한 가을의 쓰르라미 소리가 들리기를 성급하게 기다리지만, 이제 7월 말이니 앞으로 한 달 넘게 이 더위와 씨름을 해야 할 듯하다. 이렇게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어릴 적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던 아득한 추억을 소환해본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내가 어릴 적에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빨갛게 익어 단맛을 자랑하던 감이 있었다. 요즘은 철이 되어도 시장 아주머니들의 좌판에 등장하지 않아 볼 수 없는 전주 ‘파라시’다. 이 감은 껍질이 얇고 제대로 익으면 물이 많은 편이다. 씨가 적어서 쪽 빨면 씨 한두 개와 얇은 껍질만 남아 먹기 좋았다. 철에 이르게 익어 더위 먹은 심신을 달래는 훌륭한 과일이었다. 일찍 나오는 감이어서 조선 시대에는 임금에게 진상하던 품목이었다고 한다. 약간 네모진 듯 납작한 모양인데 크기가 작아 보통 감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그 시절에 파라시가 나오면 더운 여름이 끝나고 쓰르라미가 울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온다고 알리는 전령사 같은 감이었다. 다른 감이 파란 몸으로 한창 살을 찌우고 있을 무렵에 파라시는 얼굴을 붉히기 시작하여 말갛고 붉은 자태를 자랑하는 조홍시(早紅柹)다.

내가 파라시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여름에 우리 집이 노송동 언덕바지 윗동네에서 교동으로 이사하면서다. 집이 크고 터도 넓어서 좋았지만, 무엇보다 옆집의 거대한 파라시나무 가지가 대부분 우리 집에 벋어 있는 게 좋았다. 이사하면서 부엌에서 서쪽 담까지 까대기를 덮어 장작을 두는 헛간을 만들었는데, 그 까대기 지붕 위로 감이 떨어졌다. 함석 위에 ‘퉁’ 소리를 내며 감이 떨어지면 대굴대굴 굴러 물받이에 걸렸다.

나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깨우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하는 늦잠 꾸러기였는데 감 도사리가 떨어지는 시기에는 꼭두새벽 으스름에 깨어 헛간 물받이 홈통을 뒤져 도사리 수확을 한 뒤에 새벽 덧잠을 잤다. 누가 깨우지 않아도 작은형보다 일찍 도사리를 차지하기 위해 눈이 떠졌고, 형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빠져나갔다.

여름방학 끝 무렵 전주천에서 고기 잡고 헤엄치며 놀다 집에 오면 배가 몹시 고팠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헛간 물받이 홈통을 뒤져 도사리 감을 찾아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즉석에서 먹고, 덜 무른 것은 비밀 창고에 숨겼다. 숨기면서 감추어 두었던 것들 가운데 무른 것을 골라 입맛을 달랬다. 그리고는 부엌에 들어가 군입정 거리를 찾아 배를 채웠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던 시절에 내 허기를 달래주었던 파라시였다.

일찍 나오는 감이어서인지 몰라도 파라시는 채 익기도 전에 벌레가 꼭지에 들어가 도사리로 떨어지는 게 많았다. 약간 노르스름하게 색이 변한 것에서부터 발그레해진 것까지 조금 말랑해져서 떨어져 굴렀다. 단단한 도사리는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소리가 ‘땅’하고 강하게 들렸고 함석에 튕겨 물받이를 넘어 옆집 마당에 떨어졌다. ‘철떡’ 소리가 나고 구르는 소리가 없는 건 무른 감이 높은 가지에서 떨어져 터져버린 것이어서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함석지붕에 감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어느 정도 무른 것인지 판단이 되었다. 무른 감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반사적으로 튀어 일어나 달렸다. 재빨리 차지한 감을 작은형 앞에서 반으로 쪼개어 야금거리며 먹었다. 그러다가 덩치가 내 두 배나 되는 작은형에게 된 주먹을 맞기도 했지만, 약 올리며 먹는 쾌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었다.

감이 다 익어서 옆집 아저씨가 장대로 홍시를 다 따고 나면 가을이 왔다. 감을 수확하면 아저씨는 아버지에게 제법 많은 감을 가져와서 도사리나 익은 감이 떨어져 집을 더럽히고 감잎이 우리 집을 어지럽히는 일이 미안하다고 했다. 아저씨가 가져온 감은 잘 익고 좋은 것이어서 훌륭한 간식거리가 되었지만, 내게는 벌레 먹어 떨어지던 도사리 감이 훨씬 맛있는 감이었다. 물받이 홈통에서 찾아내는 기쁨이나, 작은형보다 잽싸게 움직여 감을 차지하는 쾌감이 들어있지 않은 홍시는 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있었다.

언제나 꼬맹이라고 끼워주지도 않는 작은형에게 눌려 지내던 설움을 감 도사리로 위안받던 그 시간은 어쩌면 내게 세상사는 방법을 가르쳐준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약삭빠르게 남보다 한발 먼저 일어나 부지런한 새가 되어야 하고 남에게 돌아갈 몫을 가로채더라도 양보하지 않아야 한다는 치사한 세상의 이치를. 그러나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때에 작은형이 친구들과 감서리를 해와서 감 자루를 내게 통째로 넘겨주며 “이건 니꺼다.”하며 내밀던 순간, 내가 했던 일이 얼마나 치사하고 부끄러웠던지 모른다. 그 이듬해부터는 도사리 감을 챙기는 일이 시시해졌고 그전 같은 맛도 없었다.

장성해서도 웅숭깊게 날 챙기던 작은형은 지난겨울에 가뭇없이 떠났다. 파라시도 형도 볼 수 없는 세상에 나 혼자 동그마니 남아 더위에 헐떡거리며 쓰르라미 소리를 기다린다.

김고운/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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