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과태료 밀당
18년 전 과태료 밀당
  • 전주일보
  • 승인 2018.07.0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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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지난주 내내 비가 내리다 긋다를 거듭하며 장마 티를 냈다. 태풍 쁘라삐룬이 한반도를 비켜 가 다행이다 싶었는데, 부울경에 많은 비를 뿌려 피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 태풍이 일본열도를 지나가면서 저기압대를 형성하여 엄청난 양의 수증기를 몰아가는 바람에 일본 중부지역에 650mm의 물 폭탄이 쏟아졌다는 소식이다.

비교적 재난 대비에 철저한 일본에서 51명이 죽고 50여 명이 행방불명이라는 뉴스를 보며 그 폭우가 우리나라에 쏟아졌더라면 어느 정도의 피해가 났을지 생각했다. 매년 10여 차례의 태풍을 맞는 일본은 웬만한 호우는 감당할 수 있는 대비가 되어있고 대피훈련도 철저하고 국민이 잘 따르는 환경인데도 그런 피해가 났다니 그 폭우가 정말 대단했던 모양이다.

일본의 재난대비나 대국민 행정서비스는 철저하고 차분하기로 우리나라와는 비교조차 어렵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본 이야기를 들머리에 내놓는 건 지난주에 황당한 경험을 하면서 행정의 대민 서비스나 국민을 생각하는 태도가 너무 형편없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마구잡이 정권이 물러가고 문 대통령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새 정부 들어서서는 그래도 ‘국민을 물로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런데 지난주에 엉터리 정권에서도 볼 수 없던 황당한 경험을 했다. 오후 출근을 하려다가 우편함에 우편물을 발견했다. 발신자는 전주 모 경찰서장이고 수신인 내 이름이다. 교통 범칙금 독촉장으로 보이는 우편물이다.

자동차를 타지 않은 지 4년여 시간을 보내며 제일 기분 좋았던 일이 이런 통지서가 날아오지 않는 일이었는데, 뜻밖의 우편물을 받고 퍽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개봉해보니 과속 적발 과태료 4만원을 납부하지 않아 독촉한다는 통지서다. 언제 어디서 위반했다는 사실도 적시하지 않았고, 그저 미납 과태료 4만원을 내야 한다는 것과 내지 않으면 높은 연체료가 붙을 것이라는 협박까지 곁들여 있다.

내가 시골에 살 때 자동차를 처분하면서 경찰서와 군청을 다 돌아다니며 과태료 따위의 미납금을 깨끗이 정리했기 때문에 그 뒤로는 그런 종류의 유쾌하지 않은 우편물을 받은 일이 없는데, 이런 기분 나쁜 문서를 받고 보니 퍽 불쾌했다. 더구나 그 내용에 연체료를 들먹이며 안내면 갈수록 높은 이자를 물게 될 것이라고 뒤를 누르는 건 더욱 불쾌했다.

사무실에 출근하여 안내된 전화번호에 전화했다. 전주 모 경찰서 과태료 담당이라는 여경이 전화를 받았다. 내 인적사항을 밝히고 이런 우편물을 받았는데 웬 것인지를 물었다. 오래전에 미납한 과태료가 남아 있어서 통지한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언제 것이냐고 물었더니 2000년 10월에 위반해서 차량에 압류되어 있었던 과태료라고 한다. 무려 18년이 지난 과태료라니 기가 막혔다.

차량 번호를 물었더니 2002년에 구입했던 차량 번호를 말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묵은 과태료를 어느 날 갑자기 독촉하는 태도에 부화가 치밀었다. 그 차량도 새 차를 사면서 자동차 매매상이 압류는 물론이고 경찰서 미통지분까지 확인하여 처분했던 것이라 미납이 있을 수 없는데 엉뚱한 미납 과태료를 내라면서 높은 이자 부담까지 거론하며 협박하는 게 불쾌했다.

담당자는 내가 차량을 처분할 때 경찰과 행정의 모든 과태료를 다 조회해서 냈다는데, 납부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시치미를 뗐다. 평소 빠른 속도로 달리기를 좋아한 탓에 차량을 바꿀 때마다 수십만원의 과태료가 밀려있어 퍽 아까운 생각을 하며 납부했던 터인데, 과태료 납부한 근거가 없다는 말에 화가 치밀었다. 내가 그동안 낸 과태료는 다 어디로 사라지고 낸 근거가 없다니, 그때마다 현금을 내지 않고 카드나 계좌이체를 했으니 찾아보면 근거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홧김에 자초지종을 다 퍼붓고 이따위로 행정 처리를 하는 걸 나무라자, 담당 여직원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며 오래된 과태료 누락분을 확인하는 뜻에서 보낸 것이라며 확인되었으니 통지서는 없애고,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어처구니없다. 이런 통지행위도 당연히 법적인 근거가 있어서 시행하는 일일 터이고, 통지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면 정식으로 잘못을 사과하고 취소해야 옳을 것인데, 자의로 안내도 된다는 말을 하는 그 담당자의 권한이 어디까지 인지 궁금했다.

이런 사례가 나 혼자에 국한된 것이 아닐 것이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모르지만, 억울하거나 부당한 과태료를 부담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금액이 적고 많음을 떠나 국민에게 어떤 부담을 요구하거나 과태료 등의 벌과금 성격의 부담을 지울 때는 그 근거가 명확해야 하고 움직일 수 없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단돈 10원이라도 공무원이 임의로 요구하거나 감액할 수 없어야 한다.

공무원은 국민과 밀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국민의 부름을 받아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게 본분이다. 누락이었는지, 실수였는지 모르는 과태료 근거를 오래된 장부에서 보고 돈을 내라고 통지하는 이런 공무수행이 재발하지 않을 조치가 필요하다. 특히 경찰공무원은 국민과 가장 가까운 공권력이라는 점에서 행정 수행에 신중해야 한다. 이런 일로 다시 경찰공무원이 지목받지 않도록 관계자의 주의와 신중한 행정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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