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그 날을 기억하며
4.19혁명, 그 날을 기억하며
  • 전주일보
  • 승인 2018.04.18 16: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복현

익산역사문화 회장

1960년 4월 젊은 학생들이 중심돼 자유 민주 정의를 맨주먹으로 부르짖었던 반정부 민주주의 혁명의 날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당시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권 교체를 요구했던 4.19혁명이다.

4.19혁명은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이승만 정부가 이기붕 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 조작이 이뤄진 3.15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나 12년째 계속된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경제적 파탄도 크게 기여했다.

1960년 2월 28일 불법 선거 유세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가 대구 서울 대전 수원 부산 전주 익산에서 일어나게 되었고, 시위는 차츰 부정선거 규탄방향으로 전파돼 온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비상계엄 하에 군용 짚차를 탄 군인들은 시가지를 돌며 시위하는 젊은 학생들을 잔혹하게 무력 진압했지만 학생들은 굴하지 않고 계속 투쟁했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수많은 규탄시위와 유혈 투쟁 끝에 드디어 4월 21일 내각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됐고, 4월 26일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당시 6.25전쟁의 결과로 우리나라는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입었고, 남북 분단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 돼 사회적 경제적 미성숙으로 인한 극도의 혼란 속에 있었다.

이러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장애가 많았던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4.19혁명은 마치 황무지에서 싹을 틔우듯 부정과 불의에 분연히 일어났다.

항거에 앞장서야할 지성인이나 위정자들이 눈치 보기에 바쁜 사이 행동으로 독재정권의 부당함에 대항했고, 많은 사상자들의 희생 속에 민주주의를 쟁취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혁명의 결과는 이 땅에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하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진정한 민주국가를 만드는 초석이 됐다.

그렇지만 매년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추모제와 기념식 거행에도 불구하고 반세기가 지나는 사이 4.19혁명에 대한 의미가 퇴색돼 이를 지켜봐야 하는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4.19혁명 58주년을 맞아 4.19혁명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각종 행사에 참여해 따뜻한 봄을 가져다 준 영령들의 희생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익산역사문화 회장(前 나라사랑교육 강사) 김복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