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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대한 동화금요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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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8  14: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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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정 현 / 수필가

나는 네 계절 중 겨울이 가장 싫다. 무엇보다 추위의 칼날이 내 몸에 스치면 괴롭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나름대로 좋아할 이유를 내세워 겨울의 찬가를 노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람결에 차가운 냉기가 나에게 퍼부어질 때마다 나는 오싹 떨면서 이가 저절로 마주친다. 그래서 가능한 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피한지를 찾거나 따뜻한 안방을 찾아간다. 그럼에도 겨울이 좋을 때가 있는데 하얀 눈을 보면 그렇다.

내리는 즉시 녹는 가루눈에서 함박눈에 이르기까지 하늘을 하얗게 수놓으며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 아득한 그리움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가볍게 춤추듯 흩날리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듯 펄펄 날아 오르내리는 순정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정화된 기쁨을 느낀다. 함박눈을 보면 더욱 마음이 가라앉고 어떤 전설이 내 귀에 들릴 듯싶다. 동심에 빠져들고 저 깊고 넓은 눈의 춤사위에 나도 흔들며 둥둥 떠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현실의 힘들고 고적한 삶의 생채기를 잠시 잊기도 한다. 천지에 내리는 눈의 조화인 하얀 군무群舞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울적하고 처연한 마음이 하얗게 순치되기도 한다. 오랜 세월 늘 보고 겪으면서도 언제나 새롭고 경이로운 감정이 이는 게 신비스럽다. 이럴 땐 추위를 박차고 행장을 차려 바깥나들이를 한다. 눈 내리는 산촌을 하염없이 걷는 연인들을 보면, 무대에 등장하는 사연 많은 연극의 주인공들처럼 느껴진다. 도란거리는 사랑의 밀어조차 흰 눈처럼 맑고 순수한 정으로 가득 찰 듯싶다. 날리고 흔들리며 하강하는 눈과 더불어 나도 가볍게 춤추듯 산책로를 걷는다. 내 마음을 채우는 생기가 눈의 군무와 어우러져 천지간에 퍼지면 기쁨으로 시심詩心이 솟는다. 적막강산을 하얗게 뒤덮으며 내리는 눈의 소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사락사락 내린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스르륵스르륵 내린다고 써야할까. 아니 이런 의성어擬聲語는 눈의 춤사위를 표현하는 시어가 아니라는 감정이 앞선다.

아득한 하늘, 저 위에서 한없이 부드럽게 내리는 눈의 소리가 시가 되어 학춤으로 날아오르는 아스라한 광경을 표현해 볼 일이다.

 

백설무 白雪舞

 

눈부시게 가벼운 몸짓으로

시간마저 하얗게 물들은 적막한 천지에

사라지는 춤을 추는 설雪아

너의 차가운 정열이

온 허공에 넘쳐 흘러가고

하얀 전설로 대지를 덮는데

너의 분분한 가벼움

그립고 슬픈 희열로 녹아

아스라한 동화의 세계로 퍼지며

두리둥실 하늘을 수놓는 춤사위

너는 다만 흔들리고 떠는 꽃송이로

역사의 검은 티끌도

설설雪雪 덮어 이승이 깨끗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처음 겪는 어느 베트남 처녀는 설경의 아름다움에 취해 두 손이 동상에 걸리도록 나무에 걸린 눈을 매만지며 즐거워했다. 그런 걸 보면 적어도 눈을 싫어하는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의 삭막하고 흑갈색의 풍경을 일시에 하얗게 물들이고 뒤덮는 자연의 마술은 누구에게나 경이로운 풍경이며 신비스런 하늘의 연출이다. 어린 날에 어찌 춥고 음산하고 암울하게 검은 하늘에서 저토록 하얀 눈이 내리는지 의아해하며 고샅길을 쏘다녔던 기억이 난다. 눈 내리는 풍경 속에 절절한 사연을 품은 소설 같은 이야기가 엮어진 낭만적 경험을 지닌 사람이라면 눈 위에서 뒹굴며 즐겼던 추억이 되살아 날것이다. 그 무대에 고통과 사악한 감정과 슬픈 물음으로 가득 찬 절망적 얼굴의 주인공은 없을 것이다.

눈 쌓인 벌판과 산기슭 어디에 하얀 천사들의 이야기 하나쯤 숨어있을 듯하다. 밤하늘 별빛에 반짝이는 산야의 눈밭이 신비한 전설을 풀어내며 다시 허공을 향해 분분히 눈발이 날아가는 눈세계를 그려본다. 이처럼 맑고 순수한 눈의 세상을 맞아 고달프고 서러운 삶의 진창을 한 번쯤 잊어보면 어떨까. 때마침 겨울 잔치의 메아리가 평창 일대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동계 올림픽 축제를 맞이하여 세계인들이 눈 쌓인 산길과 빙상 경기장 등에서 속도 경쟁을 벌리며 스키와 스케이트를 타고 하얀 눈의 무대를 장식하고 있다. 눈으로 만들어지는 환상적 질주 본능이 눈의 또 다른 풍경으로 펼쳐져 사람들을 열광케 할 것이다. 세계인들의 이목을 끄는 눈과 얼음의 제전이 눈에 대한 동화의 궁극적 세계가 아닌가 하는 상념이 인다. 이 순일하고 아름다운 눈의 세상에 맑은 마음을 담고 싶은 시적 서정이 겨울날의 동화로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황정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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