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땅 썩어있던 나라 이야기
몽땅 썩어있던 나라 이야기
  • 전주일보
  • 승인 2018.01.2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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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신 영 배 / 대표이사

다 갔다던 추위가 다시 찾아와 온 나라를 꽁꽁 얼려놓았다. 당초 ‘일기예보는 믿는 사람이 바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긴 하지만, 이번 추위가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추위보다 더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있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라는 해괴한 이름표를 달아도 무방할 문서가 등장한 일이다.

법원행정처가 이 나라의 법을 판단하고 적용하는 최종 기관인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분류하여 재판의 결과를 달리할 수 있도록 배치하였음이 드러난 문서다. 빨강과 파랑, 검정색으로 나뉜 판사들의 성향과 재판부 배치 기록 등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국민은 그동안 여러 재판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에 고개를 갸웃거렸던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아울러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개입 재판과 관련한 문서의 내용은 ‘이게 나라냐?’라고 묻던 이들에게 ‘나라가 아니고 개판’이었음을 고백한 증거였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한 ‘사법부 추가조사위원회’가 결과를 발표한 문건에는 법관의 학력과 경력, 사법연구회 가담 여부 등 판사들의 성향을 빨강과 파랑, 검정색으로 분류하여 정리되어 있었다. 재판을 돕기 위하여 만들어진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돕기는커녕 정권의 입맛에 맞는 재판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판사의 성향을 분석하고 형사재판부에는 입맛에 맞는 판사들을 배치했다는 사실이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라 18대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국정원이 주도한 대선 댓글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에 청와대가 개입하였던 사실을 뒷받침하는 문서도 나왔다. 사법부의 수장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사건에 개입된 정황이 드러나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 뿐 아니라, 법원도 떡 주무르듯 손아귀에 넣고 재판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며 항소심을 기각하도록 하려다 실패하자 대법원 전원합의로 파기환송을 하도록 지시하고 대법원은 지시에 따라 전원합의로 파기환송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우병우가 기자들의 질문에 레이저 눈빛을 쏘았던 데에는 나라의 법을 임의로 주무르는 저승사자의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는 옛말대로 영원한 권력은 없는 것이어서 그도 지금은 속절없이 구치소에서 지난 세월을 곱씹고 있을 뿐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원래 행정공무원으로 이명박이 서울시장 때인 2003년~2006년까지 행정제1부시장이었다. 이명박이 대선에 승리한 뒤 2008년에 행정안전부 장관에 기용되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제30대 국정원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정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대단한 충성심으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국정원장이 되었다. 이명박의 입안에 혀처럼 살갑게 굴어 나라를 위하기보다는 개인에 충성하는 사람의 표본이 되었다.

어쩌면 국정원의 특수공작비 상납의 관행은 원세훈 때부터 일반화 된 일일 듯하다. 그는 개인에 충성을 다하면서 자신의 후일을 위하여 국정원의 특수공작비를 미국의 대학에 기증하기까지 하면서 상당한 잇속을 챙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본인을 위하여 그런 지출을 감행하면서 청와대에 4억원만 보냈을 리가 만무하다는 짐작을 내놓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4억원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고 앞으로 MB가 구속되고 나면 더 많은 내용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원세훈은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1심에서 선거법 부분은 무죄, 국정원법 위반은 유죄로 판단되어 징역 2년6월에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검찰과 피고가 모두 항소하여 고법에서 선거개입과 국정원법 위반 모두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3년, 자격정지 3년으로 법정 구속되었다.

2015년 2월 10일 고법 재판이 끝난 직후에 법원행정처는 재판부 동향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우병우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여 사건을 ‘파기 환송’할 것을 주문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의 대법관이 내린 결정은 파기환송이었다. 13명이 모두 고등법원의 판결을 다시 하라고 판단하는 13:0의 결정이었다. 우병우의 주문대로 대한민국의 대법관들이 고분고분 말을 잘 들은 것이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이미 정권이 힘을 잃어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원세훈은 2015년 10월 6일 보석이 결정되어 출감했다. 그리고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난 2017년 8월30일 파기환송재판에서는 상고심에서 보다 형량이 1년 더 늘어난 징역 4년에 자격정지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다.

지난 2007년 대선 이후 이 나라는 각 방면에서 후퇴를 거듭했다. 특히 그동안 숱한 목숨들이 희생된 대가로 조금씩 쌓아놓은 민주화의 계단들이 한꺼번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명박이 취임하자마자 백골단이 재등장하고 물대포와 차벽, 최루탄이 난무하는 강압통치의 시대로 돌아갔다. 국민의 뜻은 위정자에 의해 무시되거나 말살되었고, 불법과 부정은 모든 곳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무자격 박근혜가 취임하면서 나라는 완전히 망가졌고 세계의 웃음꺼리로 전락했다. 사법부가 정권에 의하여 유린되었던 흔적들이 여실히 나온 오늘,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없도록 사법부의 정화는 물론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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