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말과 글
  • 전주일보
  • 승인 2017.05.29 18: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과 글은 생각의 외연화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이 바르고 곧아야 말에 품격이 있고 글에 정연함과 무게감이 더 해진다. 또한 얕지않은 수양과 함께 오랜 독서와 사유의 과정이 깊을수록 정제된 생각, 풍성한 말, 달관한 글들이 선 보인다. 말과 글은 의식의 산물이며, 그 의식의 표현 양식이기 때문이다. 말의 속과 겉이 다르고 글에 대한 의식과 표현이 어긋난다면 허풍이요, 세상을 호리는 요언(妖言), 삿된 글에 불과하다.

생각은 내면의 은밀한 지점이라 그 실체를 짚어내기가 쉽지 않다. 말 또한 녹음이나 녹취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오랜 시간 붙잡아두기 어렵다. 그러나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 형태는 지면을 통하거나 컴퓨터 화면이나 메일, 휴대폰 문자 메시지 등 다양하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선인들의 글은 갑골, 죽간, 석판, 석벽에 이어 종이가 발명된 이후 수많은 서책 등에 실려 전해온다.

세상의 말과 글들은 어떤 쓰임이 있는가. 예수와 석가, 부처, 공자 등 성인의 말과 글은 그대로 고전(古典)이 된다. 역사에 길이 남을 빼어난 시인과 명문장가들의 그것도 후학들의 학습과 수양에 전범(典範)으로 작용한다. 동양의 글 쓰임은 윤리에 터잡아 미풍(美風)을 신장시키고 악덕(惡德)을 바로 잡는 죽비의 역할을 해왔다. 말하자면 비유로써 세상의 옳음과 그름을 경계하며 은유의 암시로 참과 거짓의 잣대를 삼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사고의 다양성을 담보하는 자양분이 되며 사유의 깊이를 더하고 폭을 넓혀 의지의 무게를 든든하게 해주는 길잡이로서의 기능이 톡톡하다. 이를테면 옛 전범을 본원으로 해 당대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체계를 정립하고 그 문화의 지향점에 부합하는 수단이 되고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바람직스럽지 못한 부정의 측면에서 때로 특정 권위의 출현과 지탱을 위한 체제 이데올로기 형성에 기여하는 효용 가치도 있다.

여러 부류의 말과 글의 쓰임 가운데 고의적인 위악(僞惡)에 터잡아 세상과 더러운 거래에 차출당하는 사례도 적지않다. 얕은 배움(천학·淺學)과 변변치않은 재주(비재·非才)에서 덧없이 나오는 말과 지망지망히 써대는 깊이없는 글들이 그렇다. 그러한 말·글들은 고매한 정신세계에 타격을 가하고 세상의 순정한 질서를 무너뜨린다. 다듬어지지 않은 설익은 사고 혹은 사유를 바탕으로 한 말이나 글쓰기는 경계의 대상이다. 부끄러움으로 돌아보아야 할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입밖으로 나온 말, 생각의 정영(精英)인 글.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