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서비스
퀵서비스
  • 전주일보
  • 승인 2017.04.2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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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여화 / 수필가

삼일절 휴일에 받은 전화 한통. 그것도 늦은 오후 5시 반에 온 전화를 받고 나는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안산으로 가기위해 고속도로를 달렸다. 사선정보화마을 인터넷 쇼핑몰 배송의 책임을 맡은 죄로 “퀵서비스로 당장에 물건을 내 집 앞으로 가져오라”는 고객의 호통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다. 아직 퇴근전인 남편을 불러내서 옆자리에 앉히고 출발했다. 지리에 어두운 서울 쪽 고속도로를 달릴 적에는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든든한 남편이 옆에 있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주문한 고추장가루를 이틀이나 기다렸다는 고객은 안산시 상록구에 살았다. 남편이 인터넷으로 지도를 검색하여 제일 빠른 경로를 찾아냈다. 천안 논산고속도로를 타고 안성에서 좌회전 하여 서평택으로, 서평택에서 다시 서울 쪽 매송IC로 나가야 지름길이라는 걸 알아냈다. 미리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 해두고 경로를 따라가다 논산쯤에서 “지금 고춧가루를 갖고 올라갑니다.”고 고객한테 전화했다. 밤길에 장거리를 운전하면서 속 터지는 내 감정을 죽이고 접대용 언사로 정중하게 말했다. 화가 머리꼭지까지 올라온 고객에게 침작한 어조로 “퀵서비스 대신 내가 직접 물건을 가지고 지금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이런 장거리 배송을 직접 해본 건 처음이다. 하지만, 고객과의 약속인 배송이 우리 쪽의 실수로 차질을 빚었으니 그렇게라도 보상을 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고객이 주문 한 다음날에야 쇼핑몰에서 내게 오더를 넘겨주어 주문일시가 하루를 지나났고, 그날 2월 28일은 택배회사가 휴무라서 물건을 발송할 수 없었다는 내 변명은 오히려 고객의 화를 돋우게 되어 직접 물건을 가지고 안산까지 가게 된 것이다.

전화주문과는 달리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고객이 결제한 시간과 중간 제휴사에서 넘어오는 시간이 다른데, 이 고객은 그야말로 똑 부러지게 따지고 들어서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밤 운전이 불가능한 남편이어서 나 혼자 왕복 운전을 해야 되므로 갈 형편이 아니었으나,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다.

상품은 57,000원짜리였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고추장 담글 준비를 해서 고춧가루를 주문하고 도착하기를 기다렸는데, 이틀이나 지나서도 상품은 출발조차 하지 않았으니 화가 났을 법도 하다. 고객의 입장에서 여러 번 생각하고 내 경우라면? 싶어서 내가 여섯 시간의 어려운 운전을 감수하고 나선 것이다.

퀵서비스라도 시켜서 보내라고 불같이 화를 내는 고객에게 “내가 직접 퀵 배달을 하리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최상의 대응이었다. 그 사람은 당장 그 저녁에 고춧가루가 필요한 것이다. 봄비가 추적이는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서 안산시 상록구 까지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고춧가루를 건네주고는 마음을 쓰다듬고 어르면서 나는 볼멘 투정보다는 그래도 집이 찾기가 쉬워서 다행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기왕에 거기까지 가서 주문 시간이 어떻고 택배사가 어떻고 구구절절 할 말도 많았지만 그건 변명일 뿐이다.

그렇게라도 물건을 전하고 나니 차라리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되짚어 내려왔다. 여전히 봄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당초 들어갔던 매송IC로 다시 나와야 하는데 안내 표지판을 잘못 보고 긴가민가하다가 엉뚱하게도 군포로 들어갔다. 일이 꼬이는 날은 거듭 꼬이는 법, 아차, 싶었지만 이미 진입했으니 별수 없이 원주행 영동고속도로를 달려야했다. 달리다 보니 북수원 쪽으로 들어섰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수원이면 신갈이 가까울 터, 일단 신갈 쪽으로만 달리면 가다가 경부선으로 진입하기가 용이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랬다. 신갈 표지가 보이고 이어서 대전방향 나가는 길 표지를 보고서야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면서 안심이 되었다.

그 밤 9시가 넘어서 되짚어 내려오는 길은 멀기만 했다. 안성 휴게소에 서 늦은 저녁을 먹고 한숨을 돌렸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반, 장장 여섯 시간 반 동안 운전을 하고 왔더니 힘이 풀리고 그때까지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던 어머니도 우리가 당도하고서야 잠을 청하셨다.

맞아, 퀵서비스가 이런 거구나. 억지로 하는 심부름도 심부름 나름이지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 여자는 택배회사 중견 간부라고, 그래서 내일은 출근해야 하니 시간이 없다고 휴일에 끝내야만 한다는 사정이 있었단다. 아, 그래서 그렇게도 당장 퀵으로 보내라고 큰소리 쳤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물속에 가라앉는 솜 마냥 따뜻한 구들장에 몸을 뉘었다.

김여화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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