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벌써 저만치에….
봄이 벌써 저만치에….
  • 전주일보
  • 승인 2017.04.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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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운 /수필가
   

꽃잎 한 장이 떨어져 날리는 데에서도 봄은 사위어 간다.(一片花飛減却春)는 두보의 마음이 되어 이 봄을 보내고 있다.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오는 듯했던 봄이 이미 저만치 가고 있음을 실감하여 안타까웠다. 얼어붙은 겨울을 그 가냘프고 여린 봄이 밀쳐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 것일까? 따스함이 찬 기운을 녹여 밀어낸 것일까? 그렇게 추운 겨울을 힘들여 밀어내놓고 왜 금방 떠나는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배운 뒤부터 맞이하는 봄은 늘 생소했다.

자전거로 전주천 산책로를 따라 달리다가 벚꽃이 화우(花雨)로 내리는 천변 길로 올라섰다. 비록 포석이 깔린 차로 옆이었지만, 봄 향기와 꽃비가 한 없이 내리는 그곳은 적어도 그 순간만은 천국이었다. 내가 화향(花香)속에 잠겨 들어가자, 꽃잎은 내 몸에 들어와 잠자던 세포들을 깨우고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 향기롭고 보드라운 꽃눈 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건 실례인 것 같아 내려서 걸었다. 눈처럼, 비처럼 꽃비가 내리는 길 위에는 하얗게 깎여 떨어진 봄들이 부는 바람에 팔랑거리며 마지막 몸부림을 하고 있었다.

꽃이 지기도 전에 성급한 새잎이 연두색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봄이 왔나보다 했는데 벌써 저만치에서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다시 자전거를 몰아 삼천 제방 길을 달렸다. 이제부터는 파스텔 톤의 산색이 고와지기 시작할 때다. 벌서 산이 잿빛 어둠을 떨쳐내고 연두색을 머금기 시작했고, 드문드문 산 벚꽃이 피어 얼룩덜룩 무늬를 놓고 있다. 며칠 더 지나면 짙고 연한 파스텔 톤의 산색이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할 것이고, 산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 나는 기어이 시큰 거리는 왼 무릎을 달래가며 산을 찾아 갈 것이다. 봄의 유혹은 여린 내 심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어서 무릎의 통증 따위는 거뜬하게 이겨내게 할 것이다.

봄 산의 향기는 세포 구멍을 열고 들어온다. 겨우내 움츠렸던 살갗이 생명의 냄새를 맡아 활짝 열리고, 열린 살갗에 봄의 생명과 산의 향기가 스민다. 그 향기를 세포에 가득 넣으려면 등성이 길을 버리고 산짐승들이 다니는 길을 찾아 올라가야 한다. 산토끼, 노루, 담비, 족제비, 멧돼지 녀석들이 다니는 길은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자세히 보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위치에 나 있다. 생각만 해도 아기자기한 그 산길엔 지금 취가 제법 대궁을 밀어 올려놓았을 터이고, 원추리는 키가 많이 자랐을 것이다. 산달래도 나오고 두릅도 가지를 벌리고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봄은 버들개지가 피고 산골 개울의 얼음이 녹아 졸졸거리기 시작하면서 열렸다. 봄다운 봄은 매화 향기와 산수유의 노란 안개가 필 때쯤 제 맛이 났다. 시장 할머니의 좌판에 쑥과 냉이가 나오면 된장 살살 풀고 멸치육수를 우려내서, 냉이 쑥국을 끓여 먹어야 겨우내 묵혔던 군내 나는 입맛이 청량하게 된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시장 좌판에서 삼례 제방에서 캔 봄 달래나,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전주 봄 미나리를 만날 수 있었다. 달래는 뿌리 속에 붙은 모래꼭지 혹을 떼어내고 깨끗이 씻어서 새콤달콤하게 무치고, 미나리는 데쳐서 미나리강회를 돌돌 감아 새콤한 초간장을 곁들여 먹는다. 봄을 제대로 맞이하려면 적어도 냉이 쑥 된장국과 달래무침과 미나리강회까지는 먹어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겨울의 추위에 움츠려 있던 에너지가 봄이 왔음을 짐작하고 스멀스멀 피어올라와 심신에 가득 퍼져서 동네 뒷산의 장끼마냥 “꺽~꺽~” 하며 까투리를 부르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진달래꽃을 따서 화전을 부치기도 하지만, 진달래에 소주를 부어 시원한 곳에 묻어 두었다가 술이 익으면 먹는 두견주를 담고, 고사리를 끊어다가 삶아 설핏 말려서 참조기 매운탕을 끓이는데 넣어서 먹으면 봄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산에서 취나물과 두릅, 엄나무 순, 참 옷 순을 따서 데쳐서 초간장을 곁들여 먹으면, 봄이 내 몸 안에서 다시 피어났다.

봄나물의 제왕은 뭐니 뭐니 해도 취다. 취가 대궁을 밀어 올릴 즈음에 풀섶에 숨어 자란 취를 뜯으면 청아한 향기가 진동했다. 그걸 살짝 데쳐서 소금과 참깨만 조금 뿌려 무치면 사근사근하고 깊고 진한 향기가 입안에 머물다가 온 몸에 퍼졌다. 취나물은 뜯어서 차에 싣고 집에 오는 내내 향기가 감돌아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다듬고 씻을 때에도 향기가 퍼지고, 삶을 때에도 무칠 때에도 사람을 취하게 한다. 그리고 초여름이 되었을 때, 숲이 우거진 그늘에 가면 한 뼘 정도 자란 취를 만날 수 있다. 그걸 끊어다가 새큼 향긋한 취 간장 장아찌를 담그면 이듬해 봄에 잃어버린 입맛을 거뜬하게 회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산림자원보호법인지 하는 법이 나와 그런 재미를 모두 빼앗기고, 향기도 맛도 없는 재배 산나물이나 씹어야 하니 봄 재미가 1/10로 줄었다. 그 시절의 봄은 파릇하고 퍽 싱그러웠다. 그 봄에 내리던 꽃비는 봄을 사위지 않았고, 신나는 여름을 끌어올리는 마중물이었다.

김고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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