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
춘래불사춘
  • 전주일보
  • 승인 2017.02.1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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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이 지난지 꽤 오래다. 얼었던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도 눈 앞이다. 절기상으로 봄의 문턱에 들어섰지만 날씨는 여전히 매섭다. 두터운 겉옷을 껴입어야 하고 옷깃을 여미게 할만큼 칼바람은 여전히 서슬퍼렇게 날이 선 채다. 아직 아지랭이는 그림자도 안 보이고 봄날의 나릇함 또한 그 어디에도 기척이 없다.

중국 전한(前漢) 원제(元帝) 때 왕소군(王昭君)이라는 후궁이 있었다. 그 시기 북방의 유목국가 흉노(凶奴)는 한(漢)나라에 절대 위협의 존재였다. 한은 후궁 가운데 한명을 흉노에 보내 유대관계를 맺고자 했다. 흉노에 보낼 후궁들의 초상화가 어전에 올려졌다. 초상화상의 왕소군은 추녀(醜女)였다. 조공 미녀로 선택된 왕소군이 소환됐는데 실물을 보니 자색이 빼어났다. 그 미색은 서시, 초선, 양귀비 등에 버금갈 정도였다. 뛰어난 미모를 지녔음에도 궁정화가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 추녀로 그려졌던 것이다. 임금을 속인 화가는 처형을 당했지만 아쉬움과 함께 왕소군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흉노로 간 왕소군은 이역만리에서 쓸쓸한 봄을 맞았다. 척박한 땅에 봄꽃이 피어날리 만무고, 봄의 흥취 또한 찾기 어려웠다. 황량한 초원지대에서 고향을 그리워 했을 왕소군의 절절한 심정을 동방규가 한편의 시(詩)에 담아 남겼다. 그 시에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오랑캐 땅에 꽃이 피지 않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어도 봄같지가 않구나)'이라는 어구가 있다. 매양 그렇지만 봄은 쉽게 오는게 아니다. 기세 등등한 동장군(冬將軍)의 심술로 늦은 한파가 반복되고 꽃샘추위가 뒤 따른다. 봄이 봄같지 않음을 의미하는 '춘래불사춘'은 그래서 내면과 외양이 다름을 일컫는 어구로 곧잘 인용되곤 한다. 계절은 좋아졌지만 아직도 상황이나 마음은 겨울이라는 의미에서다.

촛불집회, 특검수사, 탄핵 심판. 대한민국이 폭풍우 속의 조각배처럼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촛불집회는 설 연휴기간 1주를 빼고 매주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청와대 압수수색이 거부당하고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도 차질을 빚었다. 특검 수사가 미진한 터에 기간 연장 여부는 불투명해지는 모양새다. 헌재 결정을 둘러싼 좌우 이견의 충돌도 격해지고 있다. 촛불에 맞선 이른바 수구단체의 집회와 그것을 주도하는 반성없는 세력들의 힘 보태기 또한 갈수록 기괴하다. 게다가 음모론의 근거라 할 '세상을 어지럽히고 국민을 기망하는(혹세무민·惑世誣民)' 가짜뉴스까지 양산되고 있으니. 봄이 봄같지 않음은 옛 시(詩)의 소재만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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