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 가장 슬픈 사람들
청와대 앞 가장 슬픈 사람들
  • 전주일보
  • 승인 2016.12.07 16: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정길 / 주필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날, 먹구름이 바다와 닿을 듯 화면 가득히 내려앉았다. 세찬 바람에 바다가 출렁댄다. 가까스로 물위로 내민 뱃머리마저도 그나마 모습을 감췄다.

  구조요원들이 고속정을 타고 세월호가 가라앉은 주위를 쉴 새 없이 맴돈다. 단념 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 더 애가 탄다. 속절없이 또 하루가 지났다. 하루 종일 화면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다시 해가 뜬다. 오늘도 간절함 들이 담긴 뉴스들이 화면을, 지면을 메운다. 뉴스 앞에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지옥이다. 기적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들이지만 오늘 또한 그렇게 지내 버렸다.

  한 아빠의 스마트폰 대기 화면에서 딸은 구명조끼를 입고 기다렸다. 차분했다. 당연히 구조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사진 속 학생들의 모습만 보아도 그때거기, 구조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볼수록 가슴이 먹먹한 장면이다. 부모는 땅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부모들이 진상규명의지가 없는 정부에 항의하고 박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와 200m떨어진 곳에 노숙농성을 해왔었다.

  2016년 12월3일, 2년7개월이 흘러서야 청와대 앞 100m까지 갔다. 청와대는 이렇게 멀리 있었다. 이날 행진은 선두에선 세월호 유족들의 눈물로 시작 됐다. 그동안 이들은 바람에 창문이 조금만 흔들려도 자식이 두드리는 문소리로 알고 맨발로 뛰어 나갔다. 또래 애들이 재잘거리며 지나는 모습을 넋을 잃고 쳐다보기도 했다.

  식탁에서도, 상점에서 음식점에서 아직도 그들은 아들의 발소리를, 딸의 숨소리를 듣는다. 돌아 온 딸의 생일, 후드득 눈물이 떨어진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한 해 365일 하루하루는 세월호에서 희생 된 304명이 세상에서 왔던 하루하루이기도 했다. 부모의 가슴은 찢어지는데 청와대에서 들리는 말은 태반주사, 감초주사, 비아그라, 팔팔정이 말이 되고 소설이 되고 있다. 유족들은 힘이 빠진다. 기댈 힘조차 없다. 눈을 뜨고 잔다. 백번을 양보해서 단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사심을 품지 않고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돈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변명치고는 남루하고 구차하다.

   304명을 구하지 않은 책임만으로도 진실을 규명하라는 이들을 외면한 것만으로도 대통령은 옳지 않다. 박대통령의 탄핵안 표결 까지 이틀을 앞두고 있다. 현재로선 민심을 되돌릴 가능성은 전혀 없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나온 뒤 민심은 더 악화 됐다. 당장1, 2차 담화는 거짓말이 됐다.

  지난 1차 담화에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 도움을 받았으며 보좌 체계가 완비 된 후에는 그만 뒀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4월까지 중요문서가 유출 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달 2차 담화에선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 했지만, 검찰의 대면 조사요구를 거절 했다.

   3차 담화는 국회탄핵 시도를 잠시 주춤거리게 했다. 결국 박대통령과 청와대가 즉각 퇴진 외에 다른 정국 해법을 생각 할 수 없는 곤궁한 지경이 되도록 스스로를 옭아매었다.

  공동체서 시민 각자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자기 자유가 지켜지고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 받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시민들이 그 공동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나라는 시민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 안전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시민의 목소리는 수렴되지 않은 채 그저 흩어질 뿐이다. 권력자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 또한 무너졌다. 로마 공화정 시민들은 “명예를 차지해선 안 될 사람이 명예를 차지하고 능력이 없는 자가 자신들을 다스릴 때 불쾌해 했다.”고 한다.

  국민을 개, 돼지라 부른 교육부 고위관료로 해서 지금 한국 시민들도 불쾌하다. 불만스럽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살 김 모군이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고치다 열차에 치여 죽었다. 비정규직 청년의 외롭고 궁한 죽음이었다.

  그의 곁에는 나라는 없었다. 절망과 분노가 사회전반에 감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억울함이라든가 분노 불만이 임계점까지 치솟아 있을 정도다. 우리가 지켜야 할 권리와 가치가 무엇인지 답안이 매우 시급하고 긴요한 상태다.

     
 

고정길 / 주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