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도둑
책 도둑
  • 전주일보
  • 승인 2016.11.1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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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대학 4학년 때다. 국문학도 임에도 언론인이 꿈이었다. 부전공으로 신방과를 택했다. 없는 살림에 신문학개론 관련서적을 구입, 중간고사에 대비했다. 부전공의 경우 복사본 책이 어울리는데도 새 책을 산 것. 공부하던 중앙도서관 4층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책'이 사라졌다.

친구와 대책을 논의한 끝에 1층부터 4층까지 오르내리는 계단 입구에 대자보를 붙였다. "소중한 책이니 돌려 달라, 그렇지 않으면 중도 4층에 불 지르겠다". 방화는 과장된 표현이었음은 물론이다. 책은 중간고사가 끝나고 관리실을 통해 돌아왔다. 누가 ‘책 도둑’이었을까. 지금도 빙그레 웃는다.

20세기 희대의 책 도둑은 단연 스티븐 케리 블룸버그다. 그는 20년간 미국 전역 268개 도서관에서 희귀본 2만3,600여권을 훔쳐 '블룸버그 컬렉션'을 만든다. 훔친 책은 시가로 약 200억 원이라고 한다. 밤새워 책 읽는 게 몸에 배어 있었던 블룸버그는 잠을 거의 자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훔친 책들을 되팔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에게 책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 없었다. 1988년에 체포돼 벌금 20만 달러와 징역 5년 11개월이라는 죄에 비해 비교적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도둑은 아니지만 책 소유광 하면 중국 명나라 사람 주대소(朱大韶)의 에피소드가 있다. 그는 후한서(後漢書)의 송판본(宋板本)을 얻기 위해 애를 썼다. 우연히 방문한 집에서 그 책을 발견한다. 하지만 애서가인 주인이 절대 책을 팔지 않겠다고 못 박는다.

한참을 생각한 그는 "그러면 내 애첩을 드리리다"라고 하면서 다시 얻기를 간청한다. 결국 책 주인은 두 손을 들었다. 첩과 책을 바꾼 얘기다. 최근 광주에서는 60대 책 도둑이 잇따라 덜미가 잡혔다. A씨는 시내 중고 서점에서 2013년 8월부터 현재까지 48만원 상당의 책 54권을 훔쳤다.

B씨도 지난해 12월까지 시가 20만원 상당 책 40여권을 절취했다. "책을 읽고 싶은데 돈이 없었다"는 게 이유다. 그런가 하면 올 신학기 광주지역 대학가에는 불법복사 '제본'의 책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 권당 몇 만 원에 이르는 전공서적 가격 부담 때문이란다. 지난해 광주지역 대학가 책 도둑(불법복사)은 42건에 677점이다. 저작권보호센터 집계다.

동양에서 책과 관련 삼치(三痴)라는 말이 있다. 빌려달라는 것이 첫 번째 바보고, 빌려주는 것은 두 번째 바보, 빌린 책을 돌려주는 것은 세 번째 바보라는 의미이다. 지식욕에 대해 비교적 관대함을 뜻한다. 책 도둑에 대해 관대해야 할까 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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